나는 지리산을 이렇게 올랐다 (1) -1
 제목: 귀신에 홀린 한신계곡에서 만난 반딧불의 유혹(?) 사실 지리산 같은 큰 산, 웅장한 산, 육중한 산을 몇 번 다녀오고 큰소리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전라남북도,경상도 3도에 걸쳐진 그 광활한 산맥, 백두대간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하겠는가... 그저 수 많은 길중에 하나, 둘 정도의 코스를 종주하는 게 보통이다. 나는 1997년 초가을에 몇년을 별러서 최단코스를 당일 산행으로 갔다온 어리석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울에서 토요일 직장을 마치고,먼 여정 준비를 한 후 일행을 포텐셔 승용차에 태우고 밤 12시에 출발했다. 모두들 상기 된 표정, 마음을 비우고,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컴컴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즐거운 환담을 나누며 우리는 언제 갔는지 모르게 대전을 지나 옥천,금강 휴게소로 들어섰다. 칠흑 같은 밤, 차소리만 요란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온 여행객들로 붐빈다. 출출한 김에 급히 김밥과 우동을 시켜 먹었다. 새벽3시. 영동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국도로 들어서서 금산읍을 거쳐,진안, 장수를 지나 남원에 도착했다. 길고 지루한 아스팔트 길이었다. 중도에 졸음이 와서 장수군의 큰 고개에 있는 간이 휴게소에서 내려 풀밭에 드러누어 쉬어서 갔다. 여기서 만난 젊은 청년(화물차 운전기사)이 자기 고장이라고 자랑을 늘어 놓으며, 전국에서 제일 깨끗하고, 오염이 안 된 지역, 청정한 곳 이라고 한다. 은근히 이 곳 땅을 사라고 권유, 임야가 평당 300원 정도면 살 수 있단다. 와... 이렇게 싼 데가 있나,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시골 진짜 심산 유곡,오지로 남은 땅이 있었다. 우리는 남원 춘향을 모신 광한루를 돌아 다리를 건너 곧바로 정령치고개 를 치고 올라가 3거리에서 좌회전해 인월,마천에 도착했다. 아직도 어스므 레한 새벽녁. 여기저기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긴 마천교(예전의 구름다리) 를 건너 백무동계곡을 끼고 중백무,상백무동 주차장에 새벽 7시에 도착했다. 아... 멀리도 왔구나 싶다.쉬지도 않고 달려온 '진주라,천리길' 지리산 입구다. 우리가 잡은 최단코스는 백무동매표소---소로길---하동바위---샘터---암릉길 ---장터목산장---제석봉---통천문---고사목지대---정상(1915m)천왕봉 코스 였다. 왕복 10시간이 걸린다. 차를 최대한 가까운 지점까지 올라가 가게 옆 공터에 붙였다. 아직 매표원이 출근하지 않은 시각.짐을 챙기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 산속이라서 그런지 냉기가 돌고 추워진다.원정등반이라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후레시를 큰 걸 사갖고 왔는데,한 형님이 이런 건 무겁게 왜 가지고 다니느냐고 트 렁크에 던져버린다. 속이 좀 상했지만, 자존심(?)을 꺽을 수 없어 그냥 출발했다. 8시가 다 되었다. 각자 배낭을 메고,일열로 오르기 시작, 오늘 중으로 그것도 늦지 않게 오후6시전에 내려와야 한다. 부지런히 걸어 한신계곡과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좌회전, 오솔길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사람이 없었다. 1시간여 오르니 하동 에서 날라왔다는 하동바위,여기서 잠시 쉬고 또 오른다.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고 힘이 든다. 영차 영차 ,서로 힘을 내어 바위길을 돌고 돌아 약수터. 시원한 물을 마시고 수통에 가득 물을 채우고 다시 도전, 가파른 능선길이다. 와...이렇게 길고 지루해서야. 미치겠다. 햇빛이 내리 쬐어 날은 점점 더워지고 쉴 시간은 없고..... 근사하게 생긴 고사목(?)에서 사진을 한컷 누르고, 낑낑대며 오르다가 잠시 쉬는데 마누라가 배낭끈이 떨어져 들고 올라온다. 어이쿠! 저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는데 마침 정상에서 내려오는 아줌마들 중에 바늘쌈지를 갖고 있어서 빌려주어 대충 꼬매 고 다시 올랐다. 나는 기운은 점점 떨어지고, 맨 뒤에서 일행을 따라가기 바쁘다. 혹시나 해서 배낭 속에 준비물을 완벽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5명이 세끼 먹을 물과 음식, 코펠, 버너,망원경, 카메라, 불판, 돗자리 등을 넣은 배낭 무게만 10kg이 넘는다. 결국 나는 일행보다 20분이나 늦게 장터목산장 앞 야영장에 도착했다. 오후1시. 배가 고파서 야단이다. 찬바람이 휘익 불어와 어디 마땅히 서 있을 만한 곳도 없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화장실 뒤편에 자리잡고, 간신히 바람을 등지고 라면을 끓여서 후르륵 마셨다. 상대방 얼굴을 쳐다 보니 모두 죽을 상이다. 그래도 오늘은 모두들 좋단다. 역사적인 등반 날이 아닌가. 진짜 역사적인 날(?)이 될 줄이야....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욕심에 제석봉으로 해서 통천문,정상으로 강행군. 넓은 바위 투성이의 천왕봉은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기념사진을 찍으려 해도 30분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조바심이 난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오늘 중에 못 내려간다. 겨우 사진을 한방 누르고, 급히 하산, 오후3시다. ! 다리는 절고, 허리가 아파오고,온 몸이 쑤신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모두 지쳐서 어쩔 줄 모른다. 아무 말도 없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아직 이른 지 단풍이 7--8부 능선에 피기 시작한다 .큰 단풍나무가 예쁘게 피어 사진을 찍었다.나는 장터목에 가면 산장이 있으니까, 자고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그러나 일행은"빨리 내려가면 되는데..." "왜. 이런 굴속같은 데서 자느냐?"면서 막무가내다. 결국은 내려가기로 결정해, 야영장을 내려서는 순간 형님 한분이 나무계단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는게 아닌가..... 큰일이다 싶어, 달려가서 상태를 보니, 고통이 심할 정도로 발목을 다친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하산이 어려우니, 여기서 자고 가자고 다시 얘기 했더니. '병원에 가려면 빨리 내려가야지" 무슨 소리냐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이런 때 쓰는 말 이구나 싶었다. 30여분을 주무르고, 식부를 하고,쉬어 겨우 일어섰다. 다친 형님은 책임감 때문에 "내려가서 어찌됐던 침을 맞아야 한다"고 버틴다. 이렇게 해서 내려선 지리산 산행이 어찌 되었을까? 더우기 오던 길로 안 내려 가고, 한신주곡으로 들었으니 말이다. <<다음 페이지에 계속>> 2000.6.22 일죽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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