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장 6년의 회고
그 때 그 시절 추억의 6년
휘경1동 캠프장 장현옥
나의 자원봉사 캠프장 시절을 돌아보면 잘 키운 딸을 멀리 시집보내는 엄마의
마음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힘겹고 무거웠던 짐을 덜게 되어 시원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한 것과 똑같다.
‘ 네 비록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는
성경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던 6년 전, 무작정 앞 뒤 생각도 없이
이 일을 시작하였다.
경상도 산골에서 서울로 시집을 와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 줄줄이 넷이나 낳고,
아이를 등에 업고 열심히 따놓은 미용사 기능 자격증이 봉사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기술을 가지고 장안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독거노인 어르신에게
이. 미용봉사를 10여년을 봉사하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 영예의
봉사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사랑의 봉사와 재능기부의 참 뜻을 이해하고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봉사란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시간과 돈과 정력을 쏟는 어려운
일인데도 나는 마치 내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하루 종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했다.
돌이켜보면 휘경교회에서 이미용, 염색 봉사와 배봉산 청소년 숲해설과
중랑천 청소 봉사, 독거노인 도시락반찬 봉사, 학교급식 배달 봉사,
경로당 수지침 봉사, 여름방학 공부방 교실 운영 등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작지만 지역 사회에 공헌하기에 정신이 없었던
그때가 내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때는 책상도 없고, 칠판도 없던 시절에서 지금은 현대식 주방까지 갖
춘 사무실을 갖게 되는 기적을 낳기도 했다. 매주 목요일 청량리 경동시장에
나가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때가 그리워진다면 거짓말일까...
파란색 다마스를 운전하며 그 무거운 채소와 생선, 고기를 운반해준 상담가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그동안 휘경1동 캠프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봉사자, 상담가,
숲해설가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과 노고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중 물웅덩이에 잘못 발을 딛어 넘어져서
무릎 관절 치료를 받으며 한쪽 다리를 절면서도 1년을 버티었다.
하지만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후임자 캠프장에게 짐을 넘기면서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을 노래하며 새해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201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