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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김훈(독후감)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11. 1. 20. 23:52

 

 

 

독후감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장편소설


 내가 이 책을 산 것은 최근의 일이다. 롯데 청량리역사 옆에 새로 생긴 영풍문고에 들려

중국어회화<이비에스> 교재를 구입하려다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매장 여직원에게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찾아달라고 했더니 바로 앞에 인기서적 판매대에서 금방 집어주었다.

그만큼 이 책은 책방에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소설인 것이다.

작가 김훈은 원래 기자였다. 1948년생이다. 한 때 나와 한겨레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을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가 기자생활이 분에 안차던지 하루아침에 사표를 내던지고 문학수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주목받는 소설가로 우뚝 섰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을 비롯해서 에세이집으로 자전거여행, 풍경과 상처,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등 다양한 장르의 글로 독자와 평론가를 놀라게 했다.


 나는 그의 많은 책을 아직 한 권도 못 읽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명성에 맞게 독특하고 원숙한 글쓰기 솜씨를 만나게 되었다. 더욱이 내가 은퇴 후에 소위 숲해설가 라는 거창한 자원봉사 직업을 갖고 있어서 더 더욱 흥미를 느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도 한번 이런 숲 소설을 써 볼까 하고 헛된 꿈을 꾸기도 했다. 책 제목은 <내 늙은 날의 숲> 이라고 좀 얄궂기도 하고 얌체 같은 제목이 될 것 같아 포기하기로 했다.

문학--이제는 사서 하는 지난한 고행은 그만 두더라도 독후감이라도 남겨 놓으려고 한다.


사설은 이 정도로 하고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아주 간단한 구성이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전방 민통선 안에 있는 국립수목원 계약직 화가로 처음 입사해서 나무와 풀과 꽃과 겨울눈, 수피 등 세밀화를 그리는 약 1년간의 복무경험담이다. 그 속에는 주인공의 불우하고 엄혹한 가정환경과 수목원에서 겪는 상사 가족와의 관계, 시화평 전투에서 산화한 유해발굴단 동행기, 김민수라는 ROTC 최전방장교와의 인연과 헤어짐 등 평범한 소설 줄거리가 있지만 그 속에는 더 깊은 무언가가 살아 숨 쉰다. 쟁쟁쟁...쟁쟁쟁...이란 단어가 수도 없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만나는 자연생태의 소리요, 생김새요, 풍경이며 생명의 숨소리다.

 그래서 이책의 표지에 “ 쟁쟁쟁.. 김훈의 손끝에서 꽃이 열리고 숲이 열리고 사람이 열린다” 고 광고했으리라.


 그의 문장은 매우 짧고 명쾌하다. 군더더기 말이 한 자도 없다. 그래서 읽기 편하고 쉽게 이해되며 속독이 가능하다.  1장에서 30장 까지를 나는 이 책을 하루 저녁에 밥 먹듯이 독파했다. 모두 340 페이지나 되는 장편인데도 장편소설 같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숲해설 공부를 해서 그가 사용하는 용어와 그가 즐기는 자연과의 교감이 상당히 상호작용했을 것이다. 여기에 그 편린을 몇 개 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수목원 청사 앞마당에서 바라 본 전방 칠성부대 자등령의 스케치는 이렇다.


“ 나무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서 자마다의 존재를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숲이라는 군집체를 이루고 있었다. 아침마다 자등령의 젖은 숲은 자줏빛 일광으로 빛났고 바람이 산맥을 훑어 올라갈 때 잎 큰 나무의 숲이 서걱거렸다. 무수한 이파리들이 바람의 무수한 갈래에 스치면서 분석되지 않는 소리의 바다가 펼쳐졌다. 바람의 흐름이 끊어지면 숲의 소리는 잦아들었고 바람이 이어지면 숲의 수선거림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어서 숲의 소리에도 들숨과 날숨이 있었다.”

 

 그녀가 취업하여 상사로 모신 연구실장의 세밀화에 대한 당부의 변은 이렇다.


“ 식물의 구조가 중첩되거나 연결되는 부위의 표정, 식물의 생명 속을 흐르는 시간, 아침과 저녁의 이파리들의 표정의 차이를 드러내려면 우선 확대경과 현미경을 써서 세포의 안쪽과 연결부위를 들여다보는 훈련을 거쳐야 하고, 식물 세밀화 작업은 미술이 아니라 기술적 방법을 동원한 과학이지만 주관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 과학의 조건은 아니며, 세밀화는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물은 생명을 옮겨놓은 화폭은 아름다운 것...”


여름이 돌아와 패랭이꽃과 노랑어리연꽃을 데생하는 계절에 17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 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 속 뿌리 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은 살아 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


 봄, 여름은 꽃과 풀과 잎을 그리고 가을이 찾아왔다. 23장은 서어나무다.


“ 서어나무는 자등령 일대 산악에서 극상림의 군집을 이룬 수종이었다. 자등령 일대의 햇볕과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서어나무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서어나무는 자등령의 토양과 기후와 더불어 오랫동안 평안했고 다른 수종들이 그 권력을 넘보지 못했다. 넓은 잎이 많이 달려서 능선에 널린 뼈들을 덮은 나뭇잎은 대부분이 서어나무였다....“


제 30장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수행해야 하는 마지막 작업은 겨울눈이었다.


“꽃눈을 잘라보니까 그 안에 뱃속에 점지된 태아와도 같은 꽃잎이 숫자와 형태를 겨우, 그러나 모두 갖추고 쟁여져 있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꽃눈 속에서 개화를 예비하는 꽃은 이미 피어 있었는데, 아직 햇빛이 닿지 않은 어린 꽃잎들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이들이 1년에 만났다가 헤어지는 장면이 겹쳐지면서 운명의 막은 내린다. 나무와 풀과 꽃과 숲은 말할 것도 없고 감방에서 가석방으로 나와 7개월만에 지병으로 별세한 아버지와 식물종자학을 연구하는 안실장과 그리고 군에서 업무 협조차 찾아왔던 제대장교인 김중위와 그림공부를 시켰던 신우학생도 모두 회자정리한다. 그녀가 근무한 바로 자등령에서 아버지의 화장 유골을 산골하면서 제대한 김중위가 경례를 부치는 장면에서 끝났다.


저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근 1년 동안 휴전선 이남을 발로 걸어서 모두 여행했다고 한다.

이 여행에서 구상하고 체험하고 숲 공부한 결과 이런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것이었다.

끝으로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나의 알량하고 긴 독후감을 마친다.

 

“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2011.01.19          일죽 김양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