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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음식 ---여행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9. 6. 2. 01:33

광종의 애첩 황귀비의 병을 고친 "탕후루"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영화에서도 '탕후루' (糖葫芦 tánghú‧lu) 를 파는 상인을 종종 볼 있을 정도로 탕후루는 그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탕후루는 북경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북경지역을 대표하는 중국 전통 간식거리 중 하나이다. 산사나무 열매에 뜨겁게 끓인 설탕물을 묻혀서 굳게 만들어 먹는데 산사나무의 새콤한 맛과 설탕의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지만 처음 시식하는 사람은 그리 잘 적응하지 못한다.

 

지금은 산사나무 열매대신에 바나나,딸기, 산마 등 여러가지 과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탕후루'는 누가 뭐래도 산사나무열매를 사용해야 한다.

 

예전에는 볏짚으로 묶은 기둥에 탕후루를 꽂아 자전거에 싣고 돌아다니며 팔기도 하고 어깨에 사탕을 달이는 가마를 메고 현장에서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프랜차이즈 형태 및 제조상품으로 상업화되어 예전의 정겨움이 많이 사라졌다. "탕후루 팝니다!" 라는 의미의 "마이 탕후루 (卖糖葫芦 Mai Tanghulu)라는 말도 이제는 듣기가 쉽지 않다.

 

탕후루가 지금은 몇 위안이면 살 수 있는 민간의 간식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이것은 송대에 시작된 황궁의 음식이었다.

 

탕후루는 빙탕후루(冰糖葫芦)라 불리며 북송 광종(光宗)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광종의 이름은 자오팅(停 서기1147~1200년)으로 송 효종(孝宗) 자오선(赵慎)의 3남이었다. 효종이 그를 황태자로 삼고 서기 1187년 10월에 왕위를 계승시켰다. 광종은 그 다음해에 연호를 "소희()"로 변경했는데, 그 때에 광종이 가장 총애하던 애첩 황귀비(黄贵)가 병이 들었다.

 

병이 든 황귀비의 얼굴은 누렇고 몸은 수척해져 음식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어의들이 진기한 약제를 수도 없이 썼지만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황제는 애첩의 얼굴을 보면서 초췌해 갔고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했다. 할 수 없이 전국에 방을 부쳐 의원을 찾았는데 강호의 한의사 한명이 방을 보고 궁에 들었다. 그는 황귀비의 맥을 짚어 본 후 "빙탕(冰糖)과 홍과(), 즉 산사를 달여서 식전에 5~10개씩 들면 보름안에 좋아 질것"이라고 진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지만 다행히 이것이 황귀비의 입에 맞아 이렇게 복용한 후 정해진 기일에 완쾌되었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고 수심을 그쳤다 한다.

 

후에 이것이 민간에 전해져 백성들이 이것을 긴나무에 꼽아 팔기 시작했고 "빙탕후루"가 되었다.

 

산사나무열매에는 원래 뛰어난 약효가 많다고 한다. 이것은 식체를 해소하고, 어혈을 풀며, 해충을 쫒아내고 특별히 소화에 매우 유익해 자고이래로 소화불량을 해소하는 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이것은 육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에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다. 

 

황귀비의 병 역시 산해진미로 인한 식체로 작은 산사나무 열매가 병을 해소한 것으로 여겨진다. 명대의 걸출한 의학자 이시진() 역시 "노계를 삶으면 고기가 굳어지는데 산사열매를 몇개 넣으면 부드러워지고 소화에 효능이 있어 추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산사열매는 지방 및 콜레스톨을 낮추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산사식품과 품종이 다양해 졌지만 시고달며 바삭한 빙탕후루가 지금까지 가장 애용받는 식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사열매 이외의 탕후루를 먹는 것은 그 효능 면에서 산사열매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임희정 리포터=북경 )

 

 


 

중국 겨울 별미 과일 꼬치 糖葫蘆 (탕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