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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이야기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9. 3. 5. 22:11
버드나무 세 토막 |
글 / 신 현 배(시인, 아동문학가) |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를 말려 죽일 셈인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으니….” “해도 해도 너무하셔. 우리는 뼈빠지게 일한 죄밖에 없는데,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니 말이야.” 전라도 김제 땅 진흥리 사람들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보며 하늘을 원망했다. 벌써 두 달이 넘게 계속되는 가뭄이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기만 할 뿐,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하늘에 대한 원망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을 사람들을 나무라는 사람이 있었다. 수염과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였다. “하늘을 원망하지 말아요. 그러다가 무슨 벌을 받으려고…. 좀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옥황 상제님이 반드시 비를 내려주실 테니….” “할아버지는 두 달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옥황 상제님이 언제 비를 내려주신다는 거죠? 우리 모두 농사를 못 지어 굶어 죽은 뒤에요?” “설마 굶어 죽게 내버려 두시겠소? 옥황 상제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그렇게 한탄만 하지 말고 기우제라도 지냅시다. 어서 비를 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면 오늘 밤에라도 비가 오겠지요.” “또 기우제를 지내자고요? 아유,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 일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거의 매일 기우제를 지냈잖아요. 그래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그럴수록 더 기우제를 지내야지요.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정성이 부족해서일거요.” “정성이 부족하다니요?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 있는 정성 다 들였는데…. 그러고도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불볕 가뭄뿐이었잖아요. 우리는 더 이상 하늘을 믿을 수 없으니 할아버지 혼자 기우제를 지내세요.” 마을 사람들은 이제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혼자 제단을 차려 기우제를 지냈다. “옥황 상제님, 논바닥도 우리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비를 내려주세요. 불쌍한 저희를 외면하지 마시고 굽어살펴 주세요.” 그날 밤 할아버지는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는 피곤한 탓인지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할아버지는 꿈 속에서 집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불쑥 마당으로 들어섰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누구십니까?” 할아버지가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옥황 상제의 사자다. 하늘에서 왔노라.” “예?” 할아버지는 땅바닥에 엎드렸다. 옥황 상제의 사자가 말했다. “가뭄 때문에 고생이 많았겠지? 옥황 상제께서는 네 기도를 다 듣고 계셨다.” “사자님! 하루가 급합니다. 빨리 비를 내려 주십시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한다면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어떤 일입니까? 일러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마을 앞에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지?” “예, 있습니다.” “너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연못에 가서 목욕을 해라. 그래서 몸을 깨끗이 한 다음 버드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그러면 공자님이 햇빛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이다. 공자님은 너희 마을뿐 아니라 어지러운 이 나라를 구하고 영원토록 다스릴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님이 가뭄도 해결해 주시나요?” “그렇다. 공자님이 다스리는 세상은 가뭄도 없고 홍수도 없을 것이다. 자손 대대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사자의 말을 듣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공자님이 오시면 이 땅에 지상 낙원이 열린다니, 놀랍고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공자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시지 않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자가 돌아간 뒤 할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났다. 참으로 신비하고 복된 꿈이었다. 꿈 속에서 들은 이야기가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기쁜 소식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전해야겠다.’ 할아버지는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하늘 저편에서는 샛별이 빛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외쳤다. “오늘 정오에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에 모이세요. 공자님이 햇빛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십니다. 공자님은 오시자마자 비를 내리실 겁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붙잡고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버드나무 아래로 꼭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공자님이 우리 마을에 오신다고요? 개가 웃을 일이네요. 공자님이 그렇게 가실 데가 없나요?” “꿈 속의 일을 가지고 뭘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꿈에서 들은 말을 그대로 믿으세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코웃음을 쳤다. 할아버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새벽잠만 설쳤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정오가 되었다. 버드나무 아래에 모인 사람은 할아버지를 빼고 다섯 명뿐이었다. 평소에 할아버지를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맥없이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겨우 다섯 명뿐이라니, 사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구나. 할 수 없지. 우리끼리라도 목욕을 하는 수밖에….’ 할아버지가 말했다. “자, 연못 속에 들어갑시다.” 모두가 옷을 훨훨 벗고 연못물에 들어가 온몸을 깨끗이 씻었다. 목욕을 마친 뒤 그들은 버드나무 아래에 둘러앉았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옥황 상제시여! 공자님을 보내주십시오. 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려주십시오. 적은 무리가 모였다고 노여워 하지 마시고, 저희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런데 할아버지가 여기까지 기도했을 때였다. 맑은 하늘에 별안간 먹구름이 뒤덮였다. 그리고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천둥 소리가 하늘 자락을 찢었다. “우르르 쾅!” 연못에 벼락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연못물이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더니, 논과 밭을 적셨다. 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땅들은 연못물로 타는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연못뿐이 아니었다. 버드나무에도 벼락이 떨어졌다. 버드나무는 우지끈 쓰러지더니 세 동강이가 나 버렸다. 버드나무 아래 모여 있던 사람들은 버드나무가 쓰러지는 순간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몰려온 뒤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깨달았다. 할아버지의 말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 하늘에서 위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옥황 상제의 사자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데려간다.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 너희들이 모두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님은 내려오시지 않았다. 앞으로 수백 년 뒤에야 이 땅에 내려오실 것이다. 너희들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따라서 그 벌로 이 마을을 떠나라. 세 동강이 난 버드나무 토막을 찾아 세 무리로 나뉘어 살아라. 이 마을에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다섯 사람만 살아야 한다.” 마을 사람들은 사자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 마을에 남았다. 연못을 샘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진천’이라 지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버드나무 토막을 찾아 세 무리로 흩어져 마을을 떠났다. 버드나무 위토막을 찾아 그곳에서 살게 된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상목’이라 지었다. 그리고 버드나무 가운데 토막을 찾은 사람들은 ‘중목’, 버드나무 아래토막을 찾은 사람들은 ‘하목’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 진천, 상목, 중목, 하목 등 네 마을은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진흥리에 있는데, 진흥리 사람들은 지금도 햇빛을 타고 내려온다는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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