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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 그 가을--이민화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8. 10. 29. 08:14

 

    떨림, 그 가을

 

가을이 온다.

아무도 가지않는 구부정한 산길을 따라

새들의 지저귐을 베어 물고 가을이 온다.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단풍잎 사이사이에

 

가벼운 깃털을 꽂은 붉은 입자들이 자르르

나는 조용조용 아랫도리 촉수를 세우며

단풍나무 젖꼭지를 매만진다.

 

내 자궁 어딘가에서 작은 입술을 가진

이름 모를 야생화가 벙글벙글 웃는다..

어디서부터  젖어오는 떨림일까

 

끝없이 허공을 미끄러지듯 하강하며

꽃향기로 가득찬 오솔길을차지하는

거미들의 율동.

 

단풍나무가 풍경을 흔들 때마다

내 심장 속 붉은 빛을 뽑아

온 숲에 내다건다 .

 

거리와 틈을 금세 좁히는 찰나의 카메라 처럼

잠시 꿈틀대는 떨리는 이미지를

모두 섭렵하는 불법체류자

가을, 가을이 온다.

 

 이민화(1966~     )

------------------------------중앙일보 9/29자 <시가 있는 아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