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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강산 여행기---2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8. 10. 5. 20:08

제1일;
설봉호를 타고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바라보며...

속초행 버스를 타야 하므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7시전에 태평로 한국
언론재단 건물 앞에 도착하니, 관광차 2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수은주가 갑자기 내려가 제법 쌀쌀한 아침이다. 버스 안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 버스2대는 인원 점검을 마친 후 정각 7시에 출발,
출근시간의 혼잡한 시내중심지를 빠져나갔다.

25인 승 관광버스는 자리가 넓어서 앉기 편하다. 복잡한 서울거리를 빠져나가 부부간선도로를 거쳐서 강경국도로 접어든다. 덕소를 지나 팔당댐을 지나니 한강물이 햇살에 반사되어 은비늘을 깐 것 같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자고
청명한 일기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왠지 이번 여행은 신혼여행만큼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8시반 용문 용두휴게소에 잠시 들러 볼일을 보고, 모닝커피도 하나씩 들고 올라탔다.

여기저기 흩어져 앉은 일행은 소곤소곤 다정한 모습, 즐거운 표정들이다.
안면이 있던 분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며 즐겁게 달렸다.
여행안내서를 보니 첫날 일정은 속초항에서 '설봉호'를 타고 4시간동안 항해하여 북한 고성장전항에 도착, '해금강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서울에서 4시간 걸려 속초항에 도착, 통관수속하고, 탑승하고, 오늘은 종일 차 타고, 배타는 일이 전부다.

44번 국도를 따라 4시간여 질주 끝에 버스는 미시령을 넘어 설악 단풍을 뒤로하고 속초시내로 내려갔다.
이곳 설악산 단풍과 산세도 금강산 못지 않은 비경이다. 울산바위가 때마침 솟아오른 햇빛을 받아 검게 실루엣을 그리며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름답구나.'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마도 저 울산바위를 수백 개, 수천 개 모아놓은 곳이 바로 금강산이리라 상상해본다.
금강산 일만이천봉----봉봉봉.

11시반 속초항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도착, 짐을 챙겨 안내의 지시에 따른다. 좌석번호표를 받고 바로 승선, 웅장한 설봉호 갑판으로 올라갔다. 입구에 죽 늘어선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금강산여행이 시작되었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필리핀 안내원이었다. 우리말도 서투르고 피부색깔이 까무잡잡하다. 1만톤급의 설봉호는 5층으로 된 거대한 여객선---얼마나 큰 배인지 특급호텔 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1998년 건조된 것으로 총길이가 114m, 폭이 20m, 시속 17.8노트의 쾌속정이란다.
400명을 수용하는 객실과 330개의 좌석, 승객 730명, 승무원 70명 최대 800명이 승선할 수 있다. 웬만한 폭풍이 불어도 끄떡 안 할 것 같다.

집사람은 배멀미를 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배를 타기 전에 매점에서 멀미약을 사 가지고 왔다. 차멀미는 안 하지만, 배멀미는 바닷바람만 쐬어도 골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호화여객선을 타보니 호기심이 나서 각층의 객실,레스토랑,나이트클럽,바, 로비, 라운지를 구경하느라 분주하다.

출항직후 모두 객실 안에 자리를 잡고, 지금부터 앞으로의 일정과 배 안에서의 행동, 구명대, 구명조끼 사용방법 등 소정교육을 받았다. 모두들 긴장과 흥분으로 경청하는 모습이다. 좌우를 둘러보니 젊은이와 아이들은 없고 50대 이상의 장년과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효도관광으로 금강산을 많이 찾아가는 것 같다. 나는 맨 위층 갑판에 올라가 속초 앞바다와 설악산을 구경하면서 '아!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강산엘 가게 되는구나!' 하며 쾌재를 불렀다.
육중한 설봉호는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 멀리 동해바다 한가운데로 항진했다.
갑자기 해풍이 불어와 추워지기 시작한다. 배는 앞뒤로 흔들리고, 그냥 서 있어도 좌우로 흔들린다. 다른 승객들도 하나 둘, 갑판에 나와서 이리 저리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망원경도 보고---
배는 점점 속력을 내며 항로를 따라 돌진했다. 파도가 뱃머리에 부딪쳐서 갈라진다.
천하 제일의 명산, 금강산은 어떤 색깔일까, 울긋불긋한 빨간 단풍산일까? 아니면, 벌써 낙엽이 쌓인 골산일까--상상해보았다. 책에서 사진으로,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아온 금강산---점점 더 궁금해진다.

우리 부부는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뱃머리에 서서 북녘을 바라보며 찬바람을 쐬면서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마침 안내 직원이 올라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며 스카이 라운지(?)에서 생맥주를 시켜놓고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었다.
지난 봄에 한번 다녀온 금강산이라 더 흥분된다고 한다.
'봄에 갔을 때와는 또 다를 것 같다.'면서....
'처음 본 금강산은 역시 천하 제일이더라...'는 소감이었다.



날이 저물어 황혼이 질 무렵 드디어 멀리 장전항과 금강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객실에 앉아 있던 여행객들이 우르르 갑판에 나와 환호성을 지른다."와---"
입항준비 시간이다. 모두들 다시 객실로 들어와 입북 및 세관 절차를 교육받고
휴대금지 품목인 카메라(160mm 이상), 비디오(24배줌 이상),쌍안경(10배율 이상),핸드폰,밧데리 등을 개인별로 수거하여 별도 보관시켰다.
남과 북, 같은 한겨레면서 이런 번거로운 통관수속을 밟아야 하는 엄혹한 분단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두들 신분증과 목걸이 (출입국허가서, 비자)를 목에 걸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6시경에 베에서
하선을 시작했다. 조별로 나누어 행동. 한줄로 서서 북한군의 통제아래 입북수속을 마치고 숙소인 해금강호텔로 들어갔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미리 대기한 금강산관광버스(현대차 제공)를 타고 온정각 휴게소로 향했다.
오늘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온천욕은 생략하기로 하고, 곧바로 저녁 식사시간으로 들어간단다.
북녘 땅의 첫 식사---가 궁금했다.호텔 뷔페 식으로 차린 식단을 보니, 서울의 평범한 일반
뷔페식당과 같다. 물어보니, 이곳은 현대상선에서 장만한 남한음식인데 야채는 영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것도 있단다.
서비스하는 아가씨들은 모두 필리핀 사람이었다.

이제 다소 흥분이 가라앉았다. 삼삼오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온정각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려 상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매점을 한바퀴 빙 둘러보고,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았다. 북한산은 술종류, 전통차류, 산나물, 한약재, 동양화, 수예품, 꿀종류 등 토종농산물 밖에 없다. 가격이 좀 비싼 편이다.
2차,3차 산업이 발달 안된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숙소에 도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낼은 7시 정각에 식사를 해야 한다.
강원도 고성군 장전항----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유일하게 바다에 떠 있는 선상호텔의 가벼운 흔들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제2일>

날씨마져 우리를 반겨준 구룡령 산행,옥류동의 단풍 절경

오늘은 진짜 금강산을 산행하는 날이다. 새벽에 자명종을 켜놓아야 했던 습관이 있어서 어떻게 일어날까 걱정했는데, 저절로 눈이 떠져 창밖을 보니 희미하게 금강산 자락이 보였다.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집사람은 벌써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나는 씻는 둥 마는 둥 한 다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깨끗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휙--하고 들어왔다. 심호흡을 하며 오늘의 산행준비를 했다. 등산복을 입고 배낭에 물병을 챙기고 카메라 점검을 한 후 식사를 하러 온정각휴게소로 향했다.

새벽길을 달리면서 조장(안내양)의 자상한 산행안내를 들었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한꺼번에 올라가니까 조별로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젯밤에는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어느 관광객인지 모르지만, 김일성 기념비 앞에 조경석으로 갔다놓은 둥근 옥돌이 4개가 없어졌다는 것---이런 불상사가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이다.

여기서부터 북한 땅이므로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한다고,,,절대로 북한 체제에 대한 말은 하지말고, 더욱이 최근 미국의 핵개발금지 조치같은 예민한 사안은 대화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얼마든지 북한 판매원과 환경관리원과 해도 된단다.

길가에는 군데군데 북한군이 모자를 쓴 채 도열해 있었다. 농촌마을이 나타나면서 학교 가는 학생들이 보이고 주민들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도 가끔 보였다.
우리 일행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쪽에서도 곧바로 응답이 왔다.
4년전 보다 북한 사람도 많이 달라지고 유연해진 걸 느낀다고 조장은 설명을 해준다.

우리 일행은 9시 정각 작은 버스에 분승한 후 왕복 4시간의 산행길에 올랐다.
온정각 바로 옆에 부서진 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의 휴양소(호텔)였는데, 노후해서 철거중이란다. 북한의 첫 번째 건물이었다. 공연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제법 큼직한 돌집인데 즉시 다시 짓지 못하고 내팽개쳐진 상태였다.

슬기(수레)너머고개를 넘어 금강송 단지와 배나무과수원을 지나 신계사 절터에 이른다. 지금은 기둥석 4개와 3층 석탑, 부도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어 창연했던 절이 지금은 절터만 남고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9시20분 주차장에 도착한 후 조별로 산행을 시작, 첫 번째 관광코스인 200m 위 목란관(현재 공사중)앞에 도착, 화려한 단장을 한 금강다리 위에서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영상의 기온에 어제와 달리 하늘은 높고 햇살이 눈부셨다.
"얼마나 기다린 금강산인데 날씨까지 우리 일행을 도와주는구나!"
엊그제만 해도 궂은 날씨 때문에 구경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가 무척 아쉬워했다는데
이번에 온 분들은 아주 행운을 만난 것이라고 조장이 귀띔해준다.

다리 밑에는 깨끗한 옥색의 물이 넘쳐흐르고, 눈부시게 흰 바위가 대조를 이룬다.
"아--이래서 옥류라고 하는구나!"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목란다리를 건넜다. 수림대까지 오르니, 갈색 참나무와 빨간색 단풍, 노란 단풍이 눈앞에 다가왔다. 좌우로 험준한 바위를 낀 협곡을 옥류가 흘러 넘친다.
말 그대로 비경--- 뭐라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풍악산---단풍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제3일>

지도를 보니 왼편으로 집선봉과 영춘대,앙지대를 뒤로 하고, 오른편에 가까이 관음연봉(상관음봉, 중관음봉, 하관음봉)을 끼고 오른다. 금수다리를 건너고 장수샘물로 알려진 삼록수를 지나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구멍바위, 금강굴이 나왔다. 돌로 된 계단을 간신히 빠져나가니, 바위에 글을 새긴 암각이 보였다.

'푸른 소나무 영원히 솟아 있으리.--서사시 중에서
사람들이여! 무심히 쳐다보지 말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푸른 소나무가...'

이런 종류의 암각은 이곳은 아주 자연스런 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자연훼손이니, 환경파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옛 선현들도 자기의 이름을 바위에다 수도 없이 새기지 않았는가---이런 전통문화를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신계동 구역을 지나 옥류동 구역에 드는 길이다.
달나라 토끼가 하루는 금강산에 내려와서 그 경치에 취하여 돌아가지 않자 옥황상제가 그 벌로 몸은 토끼고 얼굴은 입을 벌린 거북이형상으로 변하게 했다는 토끼바위와 옥화상제 바위, 자라바위의 전설을 듣는다.
수많은 바위마다 동물 형상, 사람형상으로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다.
옥류동--- 그 이름도 아름다운 옥류폭포, 옥같이 파란 물이 흐르는 계류 앞에 섰다.

파르스름하기도 하고, 연두색이기도 한 계류 위로 오색 단풍잎이 비추어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나는 넋을 놓고 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옥류담---- 작은 소는 너비6m,길이 10m, 깊이 6m, 큰 소는 너비9m, 길이 30m,깊이 9m다.
남한의 설악산과 오대산, 덕유산, 응봉산 계류가 깨끗하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순수할 순 없는 것 같다.

나는 계곡 한 가운데로 내려가 옥색, 비취색, 다이아몬드색 물빛에 취하여 떠날 줄 몰랐다.
눈을 들어 주변 산을 쳐다보니,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8m)과 월출봉(1574m),일출봉(1552m), 채하봉(1586),세존봉(1160m),옥녀봉(1424m)이 길게 연봉으로 펼쳐졌다.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하늘금을 긋고, 산 중턱에는 푸른 소나무 숲과 울긋불긋 단풍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고, 그 아래로는 커다란 소와 깊은 담이 휘돌아가고 있다.
무지개다리인 옥류다리를 건너니 곧 연주담(구슬을 연결한 것 같다는 담)이 나타났다. 돌다리처럼 비스듬히 누운 바위 위에서 연주폭포가 쏟아졌다. 폭포바위 표면이 대패질한 것 같이 매끄럽고, 폭포수는 길게 내리 뻗고, 용솟음치고, 돌아가고 제멋대로 흐른다.

<제4일>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상팔담의 8개소


다시 한바퀴 돌아드니 금강산의 4대 폭포(구룡폭포,12폭포,옥영폭포와 함께)의 하나인 비봉폭포가 맞은 편에 보였다. 세존봉 산중턱에서 힘차게 물줄기가 떨어졌다. 하늘에서 돌개바람에 휘말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비상한다. 바로 그 옆에 무봉폭포수가 봉황바위에서 천길 아래로 떨어지며 봉황새처럼 춤을 춘다.

비봉폭포

강헌규(농려)

하늘에서 요란하게
풍악 잡힐 때
봉황새 춤추며
물었던 구슬

아차, 잘못 은하수에
떨어뜨리고
깜짝 놀라 저 뫼뿌리
날아서 내리나

비봉폭포 전망대를 지나 무용교(출렁다리)를 건너니 오른편에 은사류가 흐른다. 여기서 등산로는 두 길로 갈라진다. 왼편으로 230m거리에 높이가 100m나 되는 구룡폭포가 숨어있다.
우리 조는 조장의 안내에 따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곧바로 직진, 하늘에서 8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상팔담코스로 향했다.
갑자기 80도의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이제까지와는 산세가 전혀 달라 노인들은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곳이란다. 구룡폭포의 원수가 내려오는 상팔담을 보아야 진짜 금강산의 백미를 감상하는 것이다.
다시 힘을 내여 영차, 영차 밀고 당기면서 철제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줄로 밖에는 올라가지 못하는 사다리계단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800m이상 되는 전망대에 오르는 유일한 접근로다. 여기를 올라서야 층층이 연결된 8개의 담소를 볼 수가 있다. 30여분 사투 끝에 전망대바위에 올라섰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사방 전망을 보니, 정면으로 비로봉(1612m)과 동쪽으로 세존봉, 천화대, 칼봉, 북서쪽에 옥녀봉, 북쪽으로 관음봉이 둘러쳐진 입석지대였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상팔담이 눈 아래 천길 벼랑끝에 다소곳하게 숨어 있었다.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전설의 상팔담은 목욕하러 하늘에서 내려왔던 선녀가 사슴의 도움으로 나무꾼과 만나 3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고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유유히 흐를 뿐이다.


기암괴석과 수많은 폭포,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와 담이 즐비한 외금강 제일의 산행코스를 여기서 다시 내려서야 했다. 더 이상은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일행이 다 내려가고, 북한 환경관리원과 우리측 조장들이 늦었다고 성화를 할 때까지 사진을 찍고 감상을 하다가
떠밀리다시피 그들과 함께 하산했다. 너무나 아쉬운 순간---바로 뒤에 주봉인 비로봉을 쳐다보고 눈물(?)을 머금고 내려섰다.

다시 갈림길까지 내려와 우측으로 뛰다시피 하여 관폭정으로 향했다. 백여명의 관광객은 거의 하산하고 우리조 몇 명만 구룡폭포를 찾아가는 것이다. 10분만에 도착한 정자 앞에는 하얀 물줄기가 천길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 입이 떡 벌어지고, 무서운 굉음소리에 귀가 멍했다.
폭포수의 높이 74m, 너비가 4m며. 폭포 아래 구룡담의 깊이는 10m나 된단다.
크기와 규모에 놀라기도 하지만 물빛이 어찌나 깨끗한지 그대로 받아 마시고 싶었다.
저 물은 반드시 산삼 썩은 물이 아닐까???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넋을 잃고 앉아서 연방 사진을 눌러댔다. 이제는 늙수그레한 북한관리원이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재촉을 했다.
시간을 보니 하산시간이 촉박했다. 4시간의 산행예정시간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올라올 때는 조장이 내려갈 때 사진은 얼마든지 찍어도 된다고 했지만, 정작 하산이 늦어졌기 때문에 거의 뛰다시피 해서 우리 조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제5일>

신기에 가까운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묘기에 취하여



오후 1시에 주차장에 도착, 곧바로 무료화장실에 들러(등산로상의 임시화장실은 유료임) 볼일을 본 후 버스에 승차하여 온정각휴게소로 다시 돌아왔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오늘의 금강산 산행이 너무나 좋았었다고 한마디씩 했다.
누구는 '생전에 금강산을 보았으니 여한이 없다'고까지 한다. 그동안 남북은 분단의 벽이 너무 높았고, 초기에는 관광비용이 1인당 2-3백만원으로 너무 비싸게 매겨졌었다. 4년전에는 부두시설이 없어서 바다 가운데에 배를 정박시킨 후 매일 육지로 실어 날랐던 것이 현재는 각종 휴게소, 편의시설과 호텔까지 들어서게 되었고 비용도 훨씬 싸게 된 것이다.

오후 3시 점심식사를 마치고, 평양 모란봉교예단의 공연관람이 시작되었다. 온정각 바로 옆에 세워진 금강산문화회관에서 벌어진 신기에 가까운 서커스묘기를 보았다. 1962년에 생긴 모란봉교예단은 평양교예단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 최고수준의 금상을 수상한 서커스단이라고 한다.

다만 주의사항은 공연도중 절대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들의 공중돌기,봉재주,장대재주,눈꽃조형,접시돌리기, 공 던지고 받기 등 묘기 연출에 지장을 주거나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의상과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벌어진 1급배우, 인민배우들의 공연은 숨도 고르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아슬아슬하게 진행, 언제 2시간의 공연이 후딱 지나갔는지 모른다.
바로 머리 위에서 떨어질 것만 같아 가슴 졸이다가 불이 켜지고, 단원들이 인사를 하며 손을 흔들 때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왔으니까.... 끝나고 보니 2층에 마련된 검은 옷을 입은 관현악단원들의 연주에 맞추어 율동과 음향효과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룬 하나의 종합예술이었다.

오후 5시 산행도 했고, 몸도 피곤하여 모두들 금강산온천에 가서 몸을 푸는 일이 남았다.
성인 12달러로 비싸기는 하지만, 시설은 아주 훌륭했다.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 아산재단에서 투자를 한 건물이다. 문필봉과 집선봉 같은 금강산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노천탕이 마련된 현대식 사우나 온천장이었다. 섭씨40도의 중탄산나트륨 수질에 옥돌탕, 게르마늄탕, 황토사우나. 건식,습식 사우나 등등 다양하다.

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하여 노천탕에 들어가 하늘의 별을 세며 나올 줄 몰랐다.
여기가 북한 땅인가---새삼 놀라면서---깊은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온 몸의 노폐물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가 확 풀린다.
이틀째 밤은 아주 편안하게, 마치 집에서 자는 것같이 곤히 잠들었다....

(계속)

 

금강산 주마간산 여행기 (6)편

<제3일>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를 보고 아쉬움을 남긴채....


오늘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일포 구경을 하고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는 날이다. 너무 일정이 짧아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10월---부산아시아경기대회 대 남남북녀가 어울려 환호성을 지르며 북측 누나들과 조금도 거리감 없이 잠시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잊었던 기억이 난다.
부산 앞바다 만경봉-92호 앞에서 밤새도록 실향민들은 <고향의 봄>,<타향살이><우리의 소원> 등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이제는 더 이상 두겨레가 아니며, 한겨레로서 서로 만나고,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와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어제까지의 긴장과 불안감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가볍다. 갈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금강산 22경을 모두 섭렵하고 싶었다.
8시 아침식사를 한 후 조장의 설명을 들으니, 지난 여름 수해로 해금강코스와 만물상코스는 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동석동(흔들바위)코스를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조별로 8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이번에는 금강산 반대편인 동해안 바닷가로 핸들을 돌린다.
동남방향으로---- 바다에 떠 있는 금강산이라 해서 해금강---향한다. 한참을 가니,
끊긴 다리가 나와 임시도로로 우회하여,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가 있는 조포마을길로 들어선다. 남한의 고성, 간성, 속초를 잇는 7번 국도가 연결될 신작로가 보이고, 앞으로 동해북부선 철도가 개통되면 세워질 금강산역사 옆을 지났다. 관광버스가 지나는 길만 포장되어 있고, 마을길은 포장이 안된 길이다. 공사장과 들녘에는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가는 주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는 아침밥을 해선지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끔 '자력갱생''자폭하자!' 등등 붉은 글씨의 현수막이 세워져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들녘--- 곡식을 거둬들이는 풍경은 남한에서처럼 자가용,트럭, 불조저,경운기 등은 안 보이고 통통거리는 중고차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지나갔다.

세계제일의 명산을 가지고 있는 반면, 주민의 집과 거주환경, 교통수단, 옷차림 등을 보면,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헐벗고 굶주린 북한 동포가 수백만 명이 된다고 연일 보도를 접했던 게 생각났다. 복지국가를 꿈꾼 사회주의의 결과물이 이렇게 비참하다니, 아이러니칼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현대식 좌석버스를 타고 관광을 하고 있지만, 한편 미안하기도 하고, 계면쩍어졌다. 그들도 하루 빨리 잘 살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9시경, 온정각에서 11km 떨어진 삼일포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바닷가의 해풍이 세게 불어왔다. 북한군인들이 초소에서 나와 경비구역 출입문을 열어준다. 내리자 마자 일렬로 줄을 서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삼일포라는 이름은 어느 왕이 하루만 쉰다고 왔다가 하도 경치가 아름다워서 3일을 머물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호수의 둘레가 8km, 물속 깊이가 9--13m가 되며, 호수 둘레는 36개의 작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경이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이 장군대, 삼일포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가 서 있다. 어제 본 북한 환경관리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조장들은 자기 조원을 모으고, 유래와 역사를 설명을 하느라 바쁘다. 삼일포 고분군과 구읍리 옛성터 이야기 등등 달달 외워서 알려주었다.
수백명이 줄지어 올라와 도로코스를 메웠다. 조용하던 호수가 갑자기 울긋불긋한 복장을 한 관광객으로 시끄러워졌다.
명경지수같이 맑은 호숫가---옛 선현들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을 만한 정자와 누각들.
곳곳에 전망대, 마당바위, 쉼터가 보인다.

봉래대는 장군대와 연화대의 중간에 있는 커다란 바위 전망대인데, 이곳에서 조선의 시인,명필이었던 봉래 양사언이 공부하던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봉래대 아래에 있는 봉래굴에 양사언이 썼다는 초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금강산과 삼일포는 정조가 단원 김홍도에게 어명으로 지시하여 60여점을 그려서 바친 적이 있는데, 김삿갓(병연)이 이를 비판하여 '감히 금강산을 그림으로 그린 사람이 누구냐'면서 비웃었다는 고사도 남아있다.

호수 한 가운데, 소나무가 울창한 돌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와우도(소가 누운 것 같다)는 일명 송도(솔밭섬)라고도 하며, 한껏 호수의 경치를 북돋아주었다.
지금은 공사중인 '단풍관' 옆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뒷길로 돌아가니 마지막 코스인 연화대.
5개의 큰 바위가 마치 연꽃잎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수의 반을 돌아 2시간여를 감상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언덕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니,
남쪽끝에서 북쪽 끝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해금강과 외금강, 내금강 모두 합쳐 22경의 탐승코스가 있는데 이틀간 겨우 두 개 코스를 보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먼지 하나,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삼일포 호수---그만큼 북한에서는 조상의 전통과 유적을 소중히 여기는 애국심과 유교사상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봄에 온 산을 수놓은 듯 진달래꽃이 만발한 금강산, 여름이면 온통 초록빛으로 변하는 봉래산, 가을이면 오색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는 풍악산, 겨울이면 흰눈으로 하얗게 덮힌 설산으로 변하는 개골산---금강산은 천지조화 중에 으뜸인 신의 예술작품이라 할만 하다.

12시에 버스를 타고 금강산여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북한의 1급호텔이었는데, 너무 오래 되어 현재는 사용을 못 하고 있었다. 베란다 벽에 연꽃그림을 크게 붙인 방은 고위급인사가 머무는 특실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이다.
넓은 마당에 조경사업이 잘 되어 있어 마지막으로 수정봉과 여관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온정각으로 돌아갔다.
점심식사를 한 후, 각자 호텔에 들어가 짐을 챙겨서 출국장으로 향했다. 잔뜩 기념품을 사들고 오후 2시 설봉호에 다시 올라타고, 출항만을 기다린다. 이제는 긴 여정의 막이 내리는 시간이다. 흰 갈매기가 떼지어 나르는 온정리 장전항과 고성군 고성읍을 쳐다보면서
"또 만납시다. 안녕...잘 있오..."를 외치며 지나가는 어부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누었다.
<끝>

가능한 탐승코스안내:
1.구룡령,상팔담코스: 왕복 12km
온정각(5k)---신계사터(2.6k)---주차장(0.2k)---목란관(0.9k)---앙지대(0.4k)---삼록수(0.3k)
---금강문(0.6k)---옥류동(0.2k)---연주담(0.1k)---비봉폭포전망대(0.2k)---갈림길(0.8k)---상팔담. (단, 구룡폭포 앞 관폭정은 갈림길에서 0.3k임)

2.삼일포코스: 왕복 4km
온정각(19k)---삼일포주차장(0.5k)---장군대(0.4)---봉래대(0.5k)---단풍관(0.7k)---연화대(0.3k)---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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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솟아오른 저산정에, 구름도 못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아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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