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야시--3
빗속을 질주하여 압록강대협곡을 구경
9시가 지나자 줄기차게 내리던 빗방울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깨끗이 청소한 것처럼 신선하고 촉촉한 숲속이 보였다. 갑자기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훤하게 앞이 트이고 날이 개는 것이다. 와---와---모두들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10시 장백산(長白山)남쪽 주차장에 도착했다. 매표소 입구에 돌로 세운 표지석과 안내판 지도에는 남경구(南景區)라고 되어 있었다.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표지석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며 처음으로 독사진을 촬영하면서 감격에 젖는다.
일행은 곧장 관면봉(冠冕峰) 정상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압록강대협곡을 오전에 구경하고 날이 더 개이면 올라가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사진 팀들은 주변에 활짝 핀 야생화를 찍는다고 부산하다.
겹산형화로 하얀 색의 부전바디와 고산지대에 많은 날개하늘나리, 자주색의 꽃고비, 고산 습지에 자라는 노랑금매화, 백합과 큰원추리, 아주 작고 꽃잎이 갈라진 하얀 왕별꽃, 인가목조팝나무 등 등...주변의 흙 색깔을 보니 화산재로 생긴 붉은 색의 거친 고산초원토양이다.
지남산문(池南山門)휴게소에서 30분을 지체한 후에 압록강 협곡을 먼저 가보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비가 와서 버스를 세우지 못하고 그냥 차 안에서 협곡을 구경한다고 한다. 녹이 벌겋게 슨 철조망 건너편은 북한 땅이다. 압록강대협곡(鴨綠江大峽谷)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디엠지(비무장지대)인 셈이다. 언덕길은 좌우로 지그재그 돌고 또 돌았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차멀미를 할 정도였다. 키가 큰 분비나무와 사스래나무,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나무 사이사이로 낙타봉과 크고 작은 촛대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에 뒹굴고 넘어진 고사목(古死木)이 보이는 태고의 원시림이다. 깊이 파인 협곡 아래는 폭우가 내려서 검은 물줄기가 포효하며 압록강 하류로 유유히 흘러갔다. 압록강줄기의 상류 구경을 마치고 남쪽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일시 정차했다. 11시 출입통제소 산문을 지나 길가에 내리니 모두들 우르르--- 밖으로 뛰었다. 누가 먼저 사진에 담느냐는 시간 문제기 때문이다.
개울가에 가보니 지의류와 초본 식물이 무성했다. 노란 산자고와 노랑금매화, 흰색과 분홍색의 하늘매발톱을 촬영한 후 산문에서 16인승 봉고차를 갈아타고 12시에 관면봉 바로 밑 주차장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바위봉인 관면봉이 지척에 보였으나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니까 바람이 보통 세찬 게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작년에 가이드가 서 있다가 바람에 날아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났다는 곳이다.
나는 우비를 입고 뒤쪽 구석의 간이화장실로 뛰어갔다. 이 남파코스는 금년 6월에 처음 개방하여 아직도 공사 중인지 모래흙을 가뜩 실은 덤프트럭이 보인다. 워낙 강풍이 세기 때문에 화장실 문짝 앞에 마냥 서 있는데 최유진형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이 시커먼 부석토뿐인데 희귀식물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 빨리 찍어요---찍어---”
“ 뭔데요? 어디요??? 어디...”
“ 저게 가솔송이예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흙인지 풀인지 잘 분간하기 어려운 데도 셔터를 마구 눌렀다. 가솔송과 담자리꽃나무는 남쪽 정상 관면봉에서 찍은 나만의 수확이었다.
남파 정상에서 희귀종 사진을 찍는 행운
천지 두글자가 새겨진 돌간판 옆에서 버티고 서서 또 독사진을 박았다. 관면봉을 배경으로 한 백두산 등정사진이 되었다. 오후 1시 다시 산문 주차장에 내려가 구름범의귀, 호범꼬리, 가솔송, 두메자운 같은 백두산 희귀식물을 찍었다. 내려오다가 2번 차에서 내려서 축 늘어진 야생화를 사진기에 담는 일행의 모습은 처절한 취재현장을 방불케 했다.
목재검사소와 도로포장공사 현장 사무소 건물 근처에서 촬영한 전리품은 다음과 같다.
코스모스와 비슷하게 생긴 기생초, 고광나무, 린네가 이름을 붙였다는 린네풀, 난초과 황백색의 털개불알꽃, 진달래과 흰 백산차. 톱바위취, 홍자색의 나비 난초, 난초과 앙증맞은 연분홍색의 나도제비난, 흰인가목, 백합과 두루미꽃, 노랑만병초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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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3번 화산이 분출하였고 최근에는 300--400년 전에 마지막 분출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식물분포는 호온성 열대기원 식물과 북극 고산기원 식물, 아한대성 북방계통 등 다양하게 혼재하고 지질토양은 동결층에서 형성된 것과 현무암층의 토양, 표백화 갈색토양이 결합되어 있다. 수차례의 화산 폭발로 이루어진 부석층 토양과 식물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4기 이후에 진화를 거치며 혼합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1억 8천만년 전 제1단계 빙하기는 한랭하고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애기자작나무, 참오리나무, 조름나무, 콩버들, 백산차, 노랑만병초, 월귤나무,두메들쭉, 담자리곷, 종참꽃, 애기사철란, 두메옥잠화, 백두금매화, 황새풀, 린네풀, 노루귀풀, 산석봉, 가솔송 등이 자라며 간빙기는 생장한 생강나무, 노린재나무, 북나무, 작살나무, 칡덩굴 등이 나타났다.
1만년 전후 제2단계는 후빙기에 얼음이 녹은 후에 오늘의 서해와 동해가 갈라지며 한반도가 형성되는 시기로 온통 펄로 뒤덮은 삼림 속에는 이끼류를 비롯해서 잎갈나무, 좀잎갈나무, 버드나무, 자작나무, 산마가목, 까치밥나무, 쉬나무가 잘 자랐고 늪 주위에는 버들류와 물싸리, 석남, 월귤, 참꽃, 들쭉나무가 생겼다. 초본으로는 물속새, 방울사초, 둥글레사초, 부채붓꽃, 조름나물, 곰취, 버들취, 미역취나물이 번성하며 펄이 낮은 곳은 황새풀, 사초류, 큰조아재비, 골풀아재비, 붓꽃류, 가는오이풀이 자라게 되었다.
870년전 제3단계에 들어서는 지의류 선태류, 조류와 공생하면서 산새, 산사초. 두메오리풀이 자랐으며 고산초원토양에서 진달래와 떨기나무가 우세하고 사시나무,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누운잣나무, 부게꽃나무, 산겨릅니무, 황철나무가 나타났다.
제4단계에는 이들이 진화와 생성과정과 소멸과정을 거치면서 안정기에 살아남은 저목림선구수종이 남게 되었다. 사시나무 자작, 사스래 등 저목림과 건조한 토양에 강한 잎갈나무가 천이과정을 거치며 생성되었다. 지금 백두산의 수림지대는 70%가 잎갈나무 숲이고 가문비나무, 분비나무,종비나무 같은 삼송림이 혼합된 형태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