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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권 철원지역의 탐방 안내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8. 1. 13. 21:07

                                        철원의 명승 고적

 

승일교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을 잇는 다리로서 총길이 120m, 높이 35m, 너비 8m.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 1948년 북한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6·25전쟁으로 중단. 그후 휴전이 성립되어 남한 땅이 되자, 1958년 12월 한국 정부에서 완성. 결과적으로 기초 공사와 교각 공사는 북한이, 상판 공사 및 마무리 공사는 한국이 한 남북합작의 다리인 셈이다.

3개의 교각 위에 아치형을 이루고 있는 다리로, 처음 북한 쪽에서 지을 때에는 구소련의 유럽 공법이 도입되었으나, 뒤에 한국측에서 지을 때에는 그와는 다른 공법으로 완성되었다. 처음의 북한 설계자는 진남포제련소의 굴뚝을 설계한 김명여라고 한다. 콘크리트 다리로서 시공자와 완성자가 다른 까닭에 양쪽의 아치 모양 또한 약간 다른데, 북한 쪽에서 먼저 지은 다리는 둥글고, 한국측에서 지은 것은 둥근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명칭에 대해서는 김일성(金日成)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서 이승만(李承晩) 시절에 완성했다고 해서 이승만의 '승(承)' 자와 김일성의 '일(日)' 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과 6·25전쟁 때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던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이름을 땄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는 후자의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2001년 2월 통과된 '문화재보호법 중 개정법률안'에 의하여 근대문화유산 등록대상이 됨으로써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또한, 드라마 덕이에서 주인공 귀덕이와 가족들이 함께 다리를 건너는 장면으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 바로 승일교이다. 이곳은 또한 영화 [빨간마후라]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옆에 건설된 한탄대교로 인해 다리로서의 기능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직탕폭포  직탄(直灘)폭포라고도 한다. 동송읍을 관류하는 한탄강(漢灘江) 하류에 형성된 폭포로서, 임꺽정(林巨正)이 거처했다고 전해지는 고석정(孤石亭)에서 서쪽으로 2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한탄강의 양안에 장보(長洑)처럼 일직선으로 가로놓인, 높이 3∼5 m, 길이 80 m의 거대한 암반을 넘어 거센 물이 수직으로 쏟아져내려 장관을 이룬다. 이를 일컬어 현지 사람들은 철원 8경의 하나라고도 하고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고도 한다.


한탄강  옛이름은 체천 혹은 량천으로 부르기도 한 한탄강은 태백산맥의 황선산과 회양의 철령에서 발원한 수계가 평강군 정연리(현 갈말읍 정연리)에 이르러 합류함으로써 철원, 김화, 평강의 삼각극점을 이루고, 계속 남류하여 경기도 임진강에 유입하는 전장 110㎞에, 평균 하폭 60m의 큰강이다.
강유역은 현무암지대로서 침식지가 마치 파상지형으로 섬돌모양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체천이라 했다는데, 다른 하천과 특이한 것은 평원분지 한가운데를 깊이 20~30m의 협곡을 이루면서 흐르기 때문에 그 모양이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연상케 하고 웬만한 홍수에도 범람하는 일이 없다.
그러면서 굽이쳐 흐르는 구비구비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연의 비경을 빚어 놓아 칠만암, 직탕, 고석정, 순담 등의 명승지가 널려 있으며, 사시사철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은 각종 민물고기의 서식처일 뿐만 아니라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이기도 하다.

 

노동당사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560평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현재 1층은 각방 구조가 남아 있으나, 2층은 3층이 내려앉는 바람에 허물어져 골조만 남아 있다.
1층 구조를 보면 몇 개의 방은 공간이 매우 협소해 1~2명이 사용하였거나 취조실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리(里)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의 강제 모금과 노동력 동원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8·15광복 후부터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치하에서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잡혀와서 고문과 무자비한 학살을 당하였다. 당사 뒤편에 설치된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실탄, 철사줄 등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때의 참상을 알 수 있다.
'서태지
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KBS의 열린음악회가 녹화되기도 하였다. 2001년 2월 통과된 '문화재보호법 중 개정법률안'에 의하여 근대문화유산 등록대상이 됨으로써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백마고지전적지  백마고지 전투는 한국전쟁(1950. 6·25 ~ 53. 7. 27)기간인 1952. 10월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km 북방에 위치한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놓고  한국군 보병 제9사단장(사단장 김종호)과 중공 제38군 3개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를 말한다.
 1952. 10. 6일부터 10일동안 해발이 불과 395m 밖에 되지 않는 고지 하나를 빼앗기 위해 아군과 적군 2만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전투기간 중 발사한 포탄은 적측 5만5천발, 아군측 22만발, 피아간 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회나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혈전사투의 초연이 걷힌 다음 처절하게 변모한 산용(山容)이 흡사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월정리역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역은 남방한계선에 최근접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철원안보관광의 대표적인 경유지이다. 현재는 객차잔해 일부분만 남아 있는데,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강렬한 팻말과 함께 분단된 민족의 한을 여실히 증명하여 주고 있다. 원래 경원선은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주민들을 강제동원하고 당시 러시아(구소련)의 10월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인을 고용하여,  1914년 8월 강원도내에서 제일 먼저 부설되었는데 서울 ↔ 원산간 221.4km를 연결한 산업 철도로서 철원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원산의 해산물 등을  수송하는 간선철도 역할을 했다. 현재의 월정역사는 철원안보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8년 복원하였다. 현재 월정리역 전망대는 폐쇄


도피안사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년) 도선국사가 높이 91cm의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제조 철원읍 율리리에 소재한 안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여러 승려들과 같이 가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이 불상이 갑자기 없어져 그 부근 일대를 찾다가 현위치에 그 불상이 안좌한 자세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이 불상을 모셨다 한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렀다 하여 절 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 되었으며 절내에는 도선국사가 제조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높이 4.1m의 화강암 재료로 된 3층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토교저수지  양지리 마을 인근에 위치한 토교저수지는 철원평야의 안전영농 기반 일환으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조성하여 일명 전천후보(全天候洑)로 불리기도 하는데, 1968년부터1978년까지 십년간에 걸쳐 토축(土築)한 대규모 인공저수지이다.  저수지 면적 338.84ha에 저수량은 16,568천톤이며, 유역면적 2,370ha, 몽리면적은 1,553.7ha로서 양지리, 대위리, 장흥리, 오덕리 일대의 농경지에 관수(灌水)를 하고 있다.
철원 안보 관광의 중심지인 제2땅굴 진입도로변에 위치하여 수려한 호수경관을 형성하면서, 겨울철에는 월동 철새들의 잠자리가 되기도 하는데 겨울철 새벽(7시경)에 일제히 비상하는 기러기떼의 군무 광경은 탐조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토교저수지 인근에 철새 보는 집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동송저수지  일명 강산저수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동송저수지는 월정역에서 제2땅굴로 가는 중간의 길옆에 위치하고 있다. 수계는 평강군 남면 학전리에 있는 보양호와 가곡 등지에서 유입되는 수자원을 저수하여 1977년에 토축한 인공저수지로서 제방연장은 3㎞로서 단일제당 규모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저수지면적 7409ha, 저수지량은 42,367톤이며, 유역면적은 1,827ha, 몽리면적은 802.3ha로서 강산리, 하갈리, 양지리 일부지역에 관수하는데 철원 안보관광코스에 인접하여 좋은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아이스크림고지  아이스크림고지로 더 잘 알려진 삽슬봉은 예전에 이 산밑에 삽송리(揷松里 또는 森松里)라는 마을이 있어서 이 산을 삽송봉(揷松峰 : 삽슬봉은 삽송봉의 구전변형체)으로 불렀고, 또 그 모양이 흡사 투구 같다해서 투구봉으로도 불렸다. 드넓은 재송평의 한 가운데 솟아 있는 해발 219m의 얕으막한 산이지만, 이 산이 갖는 입지적 이점은 다대(多大)하여 6·25전란때는 피아간에 처절한 쟁탈전과 포격이 극심했고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 내렸다 하여 아이스크림고지란 별명이 붙여졌다 한다.
삽슬봉은 김응하장군의 빈장묘가 있는 여우산(如愚山)과 직선거리로는 불과 2km의 지척에 있는데 김응하장군이 임진왜란때 13세의 어린 몸으로 돌아가신 부모의 장지를 찾던 중 어느 스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여우산에서 삽슬봉까지 10리길을 맨발로 쫓아가 졸라서 결국 현재의 위치에 장지를 정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한 삽슬봉은 고려시대에 산정상에 봉수대(烽燧臺)를 만들어 북쪽의 평강의 진촌산 봉수대와 남쪽의 할미산(구수봉) 봉수대를 연결하였다 한다.


샘통철새도래지  철원읍 내포리에 있는 샘통은 천연샘물이 사계절 내내 쉬지 않고 솟아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서 샘이 솟는 0.5ha 정도 크기의 연못을 말하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2㎞이내(약12만평)를  73.7.10 천연 기념물 245호로 지정해서 철새도래지로 관리하고 있다. 9세 말 무렵 태봉국의 궁예왕이 이 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통치할 때부터 주민들이 거주해 왔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철원역을 지나 월정역으로 가는 중간지점인 구릉지대에 있으며, 현무암 지반을 뚫고 솟아나오는 섭씨 15° 가량의 미지근한 온천이 겨울에도 얼지 않고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줄지 않기 때문에 300여년 전부터 백로, 두루미, 왜가리 등 철새들의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다. 오늘날은 6ㆍ25전란으로 샘통 주위에 울창했던 노송과 거목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샘통일대가 모두 농경지로 변했으나 지금도 겨울(매년 10월 중순경부터 다음해 3월경까지)이면 두루미와 기러기 등 수만마리의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와 서식하고 있으며 샘물을 이용한 크고 작은 보가 설치되어 주변 200여 정보의 농경지에 관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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