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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철 선생님 근영
일죽 산사람.일죽 김 양래.요셉.아가페.
2007. 5. 26. 22:35
김선배님...용서하세요!!!
제가 보성출신이라서 펀글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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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혼의 화신, 수많은 독립운동과 민족지도자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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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철(金甲哲) 교장 선생님 |
애국가 1절을 보면 ‘화려강산(華麗江山) 동반도(東半島)는/ 우리의 본국(本國)이요/ 품질(稟質) 좋은 단군자손/ 우리 국민일세. [후렴]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이다. 이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을 그대로 붙였다.
교가는 ‘동반구(東半球) 아세아주(亞細亞洲) 우리 대한국(大韓國)/ 문명천지(文明天地) 우리학교 보성이로세.[후렴생략]// 2천만 일심단체(一心團體) 자치국민이/ 교육계로 쟁진(爭進)하는 기관이로다.// 12점 자유경종(自由警鐘) 치는 소리에/ 태극기가 반공중(半空中)에 높이 날린다.// 무궁화 만고춘풍(萬古春風) 밝은 세계로/ 충군애국(忠君愛國) 일편정신(一片精神) 가득이 담아.// 6대주경쟁장(大洲競爭場)을 대대활보(大大闊步)로 제1우승 목적지에 도달해 보세.’이다. 교가에는 민족정신이 오롯이 담겨있어 일제가 금지시켰다.
이 무렵 보성고 인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대거 해외로 망명하자 경영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의암 손병희(孫秉熙)선생이 1911년 보성고를 인수, 천도교 재단이 되었다. 보성고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3.1독립운동이었다. 민족독립운동의 메카로서 3.1운동과 보성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다.
첫째, 보성고는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 선생을 비롯해 최린 교장 선생 등을 통해 사실상 3.1운동 발상지였다. 둘째, 1919년 2.8 학생독립선언을 보성출신 김도연(金度演)이 주도했고, 후배 송계백(宋繼白)이 독립선언서를 모자에 몰래 가지고와 선배인 중앙고 현상윤(玄相允)과 최린 교장선생을 찾아가 3.1운동 거사를 도모했다. 셋째, 무엇보다 전국 각지로 배포된 독립선언서를 보성고 구내에 있는 보성사에서 3만5천장 인쇄했다. 3월1일 서울에 뿌려진 조선독립신문 1만장도 인쇄했다. 넷째,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재판받은 학생이 20여명에 달했고, 보성고 교사 임규(林圭)는 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문을 갖고 동경으로 가서 정부, 의회, 언론기관에 배포하다 체포되었다.
이처럼 3.1독립운동은 보성고 출신들이 주도해 불을 지폈고, 최남선(崔南善)이 교사 임규의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작성, 오세창(吳世昌)에게 넘겼으며, 보성사 이종일(李鍾一)사장이 인쇄는 물론 전국 배포를 도맡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