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0. 20:41ㆍ카테고리 없음
자작도 해변의 추억
나는 지난 8월초 동해안으로 피서여행을 떠났다. 하필이면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동해안으로 피서를 가느냐는 주위의 권고도 마다 않고 떠난 것이다.
여름 피서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히 쉴 수 있고, 경치가 아름다운 해변으로 가는 게 정석이다. 굳이 그 복잡한 동해안으로 갈 이유가 있는가?
굳이 먼 곳으로 가야 가장으로서 체면이 서는 게 아닌가 하는 면도 있었고 결국은 숙박이 편리하고 비용이 덜 드는 속초 아파트로 가게 되었다.
그 복잡한 동해로 갔다 왔지만, 별로 고생 안하고 다녀왔다. 장마철이었지만 날씨도 그런 대로 좋았다. 해마다 피서를 가지만, 첫째가 날씨다.
제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휴가기간에 비가 오면 꼼짝 못한다. 바다는 커녕 문밖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자작도의 발견
금년에 우연히 들르게 된 자작도 해변의 추억은 어느 해에 못지 않은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에 있는 자작도----. 처음에는 무슨 섬 이름인가 의아해 하며 바닷가에 섬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해변에서 불과 500여M거리에 하얀 돌섬이 나란히 2개가 보였다.
파란 바다와 흰 모래사장, 그리고 양편으로 둘러쳐진 소나무숲 절벽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작은 포구였다. 이만하면 동해바다의 운치가
물신 풍기는 곳으로 안성마춤이었다.
서울에서 비를 맞으며 올라간 속초 인근 바다는 몇일 간 장마의 여운이 아직 남아 파도가 세어서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틀만에 드디어 햇빛이 나면서 우리는 고성을 지나 멀리 화진포해수욕장으로 찾아갔다.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만난 듯 모두들 북으로
북으로 차들이 몰리더니 진부령입구 삼거리부터 막히기 시작,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동해까지 와서 바다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갈까봐 한편으론 하느님을 원망도 했다. 8월 초 동해의 유명한 해수욕장은 대만원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서 송지호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곳도 출입구부터 입장 통제--- 어이쿠! 잘못 왔구나 싶었다.
금강산 건봉사
우리는 이왕 나왔으니 이 곳에서 가까운 금강산 건봉사(동해안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절)를 찾기로 했다. 진부령 쪽으로 차를
몰아 표지판을 찾아 올라갔다. 서울과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와 자가용차들이 줄로 서 있었다. 남으로 뻗은 2차선 도로를
우리는 신나게 거꾸로 달려 건봉사라고 입간판이 서있는 길로 들어섰다. 휴~ 우~.
이제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들판을 달린다. 우리 차밖에는 가는 차가 없었다. 농가에서는 한가로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이따금 보일 뿐이다. 잘 선택한 것 같다.
말로만 들어본 건봉사(주지: 정영도 스님)... 이조 때 전국 4대 사찰의 하나였고, 6.25 전란에 모두 불타버리고 지금은 절터만
남은(일부 중창중) 700여칸의 천년고찰이다.
일주문인 불이문이 보인다. 넓은 공터가 모두 주차장이 되었고, 한 켠에는 참샘물이라는 석간수 약수터가 있다.
부슬비가 내려서 우산을 챙기고 경내로 들어갔다. 마침 여승이 내려오면서 신도들과 합장하고 있다. 왼편 축대 위로는 큰 종각이 보인다
. 곧바로 오르니 돌로 세운 나무아미타불 석주가 서 있다.
잠시 구경하고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간밤에 비가 와서 푹 패인 경내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중간에 연못이 2개가 있었다.
연꽃이 심어진 인공 연못에 물고기는 놀지 않았다.
적멸보궁은 중수한지 얼마 안 된 듯, 빨갛고 파란 단청색깔이 선명했다. 마침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어 조용히 들어섰다.
이 곳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우리나라 불교의 중흥을 위해 일본에 빼앗겼던 부처님진신 치아사리를 돌려 받아 보관하고
있는 부도가 있었다.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
불자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 연신 절을 올린다. 한동안 기다리다가 절이 끝난 다음에 경내를 돌아보았다. 이 절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부도가 절 뒤 켠에 모셔져 있었다.
520년 신라 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고려초 도선국사가 서봉사라고 개칭했고,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하였고,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쳐간 1500년 고찰--- 지금은 건물은 다 타서 없어졌지만, 그 절터와 주춧돌이 파란만장한 절의 역사를 대변해주었다.
다시 오던 길을 내려와 대웅전이 보이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갔다. 워낙 경내가 커서 띄엄 띄엄 건물이 보였다. 좌우로 세운 조각돌
비석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넓은 마당이다. 모두 최근에 만든 건물이었다. 우리는 먼저 부처님진신사리 친견장이라고 쓴 건물로 향했다
. 마침 친견시간이 되어 다른 불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기다려서 안내를 받아 법당(부처님진신사리 5과를 모신 곳)에 앉았다
. 한 노스님이 나오시더니 서 있는 분들에게 꾸중을 하신다.
" 법당 안에서는 떠들거나,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됩니다.... 왜 들 서서 있소?" 묻는다.
아무도 대답이 없자, 노스님은 재차 물었다.
"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떤 분은 서울에서 왔다고 하고 한 불자는 구인사에서 왔다고 하니까,
" 이곳은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처님의 몸인 사리를 보러 온 분이라면 신자든 아니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는 그제야 말씀을 알아듣고 부처님께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한 가족이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 왜 나가느냐고 물으니,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 절을 할 수 없단다.
우리는 천주교 신자라고 대답하고, 두 손 합장하고 절을 올린 다음 번쩍이는 대형 금고 속에 든 부처님 치아사리 5과를 친견하고
나왔다. 30여분---참으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잠시나마 명상과 참선의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아름다운 바다 추억
바다에 나갔다가 차가 막혀서 천년고찰, 건봉사로 우연히 찾아들어 오랜만에 역사의 향기와 문화를 접하게 되어 공부도
하면서 유익한 여행이 된 것이다.
오후 날씨가 좋아져서 중도에 계곡 옆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고 다시 화진포로 향했으나 역시나였다. 고성에서부터 길이
막혀서 다시 남쪽으로 돌려서 찾아간 곳이 삼포해수욕장. 바다에 가까이 나가니 방금 폭우가 지난 후라 산더미 같은 파도가 일고
, 해변은 뿌옇게 물안개가 끼어 있었다. 오늘 해수욕은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시 삼포로 찾아가다가 근처에 자작도 해수욕장이란 간판이 보였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호기심에 한번 돌아보자고
간 곳, 자작도----.이름도 근사한 자작도.(스스로 만든 섬이라....)
아주 작은 포구였다. 고깃배가 줄을 서서 저 멀리 수평선위에 보이고, 해변에는 갈매기가 날고, 소나무가 우거진 절벽을 낀 해안이
한편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아! 여기다 싶어서 아예 민박여부를 물어보고 숙소를 옮기기까지 한 자작도 바닷가는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추억의 피서지로 남게 되었다.
이 곳은 원래 작은 어촌으로 고기잡이로 사는 어촌동네였는데, 3년전에 속초--간성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도로변의 주민들이 이주한
단지로 민박집을 지어 간이해수욕장(유원지)으로 탈바꿈한 곳이었다. 자작도란 이름은 이곳에 사는 80세의 최고령자가 만든
돌섬의 이름이란다.
아침에는 동해에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고, 낮에는 수심이 옅은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흰 모래사장에서 뒹굴고,
밤에는 해변에서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연인과 오붓이 거닐 수 있는 조용한 해변도로가 있고, 저 멀리 바다 한복판에는
밤새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오징어를 잡는 고깃배가 떠 있다.
우리는 이번 여름휴가를 내리 3일을 이 곳에서 보내고 민박집(평화민박; 주인 유삼광)의 친절한 서비스를 뒤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내년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고...
동해안에 수없이 많은 해수욕장 중에 가장 최근에 생긴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자작도 해수욕장은 모처럼만의 강원도
피서길을 조금도 피곤하지 않게 한 추억의 바닷가였다.
그림같이 파랗고 아름다운 해변, 고성 자작도여... 안녕....
일죽 산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