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포천 종자산 산행기

2015. 9. 14. 21:15카테고리 없음

박영춘의 산행정보, <산행기 올리기>에서 펀글

 

 

종자산, 한탄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산

 

일죽 김양래(동아투위)

 

 

 

 

 

9월8일 (토요일) 7시 반 청량리역에서 만나 일행은 트라제를 몰고

동부고속도로를 이용해 북으로 향했다.

의정부에서 길이 안 막히는 축석령 고개를 넘어 송우리를 지나 곧바로

43번 국도 포천-- 운천 방향으로 달렸다.

날씨는 너무 좋아 완연한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 돌아왔다.

구름 한점 없는 쪽빛 하늘이었다. 요 며칠동안 서울이 30K 시계가

계속되었다.

 

만세교를 지나고 38선휴게소에서 다리를 건너 좌회전, 37번 도로를 5K

가서 '오가리' 마을에서 우회전했다. 깨끗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별천지에

든 것 같았다.

이렇게 오염이 안 된 곳이 아직도 있었나, 최전방 북쪽에 가까이 온 것이

아닌가 감탄했다. 예전에는 군부대주둔지라서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아야

했던 길이다.

지금은 누구라도 차만 있으면 씽~씽~ 마음 놓고 달린다.

 

2시간 만에 도착한 영로교 아래 한탄강에는 짙푸른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그 속에 종자산의 그림자가 비친다. 저기다. 저기야.....

SK주유소를 지나면서 <종자산>의 우람한 위용에 놀란다. 저 높은 산을

어찌 올라간다?

 

 

일행은 잔뜩 긴장하면서 차를 영로상회(밤나무식당)앞에 주차시키고

배낭을 맸다. 수퍼 주인 아줌마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하산해서

올해 수확한 햇밤을 팔아주기로 했다. 병풍을 두른 듯 늘거리 마을을

감싸고 서 있는 <종자산>은 한눈에 보아도 까마득하기만 하다.

경사가 급해서 산행하기에 너무 힘이 들 것이 뻔한 산이다.

 

늘거리 '해 뜨는 마을'이란 돌판을 끼고 올라가니 학생수련장이 나왔다.

길가에 죽 늘어선 밤나무 단지.... 토실토실한 햇밤이 주렁주렁 달려

축---늘어졌다. 이 산 주변에는 밤나무 단지와 배나무단지, 대추단지가

많다. 예전의 화전민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경기도의 오지라면 가평군을 치지만, 이곳 포천군도 그에 못지않는

심산유곡이 숨어 있었다.

 

도로가 끊기고 계곡으로 들어서니 하늘을 가리는 밤나무들, 참나무들.

우리는 가다 말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밤을 줍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떨어진 밤톨을 줍고, 발로 까고 가시에 찔리면서도

밤 서리에 정신이 없나 보다. 한참을 오르며 주우니 꽤 많이들 주웠다.

등산로에 널린 게 밤송이다. 이런 자연산 산밤을 그냥 놓아두는 곳이

어디 있는가? 같이 간 일행은 혹시 산주인에게 들킬까봐 한편으로

걱정을 한다.

 

30여분을 지체, 이러다가 정상산행은 언제 하느냐고

다그쳐서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자, 이젠 그만----.그만.

점점 가파른 오르막길로 땀을 흘리며 비탈길을 올라붙었다.

산세가 험하여 초입부터 겁을 준다.30여분 낑낑 매고 오르니 조그만

건천 폭포가 나타나고, 왼편으로 돌아 위험한 너덜지대를 지나니

백길 낭떠러지다. 가느다란 밧줄을 매놓아서 붙잡고 간신히 돌파했다.

 

여기서부터 전망이 훤하게 트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출발했던 늘거리

마을의 빨갛고 파란 지붕들이 발아래 보였다. 오른편으로 나타나는

씨앗굴.... 커다란 돔을 연상시키는 굴이었다. 한편에는 쓰러져가는

움막도 보였다. 그 굴 안쪽에 누가 페인트로 크게 낙서를 해놓았다.

<종자--씨앗>의 이름이 이 자연굴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아기를 못 나서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해서 아기를

얻었다는 전설의 씨앗굴(종자굴)이 있어 신령한 곳으로 산신을 모신

곳이다.

 

하늘을 보니 큰 바위가 비를 피할 수 있게 드리워졌고, 그 사이로 물이

떨어지는 천길 폭포(지금은 비가 안와서 물은 안 떨어진다)가 보인다.

아래에는 물을 받는 드럼통이 있다.

여기서 왼편으로 바위를 돌고 돌아 첫 번째 전망대 바위에 오르니, 고도가

높아 한탄강 줄기가 훤히 보였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우리는 하도 경치가 좋아서 그 바위에 올라서 '야호!'를 연발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여러 방을 눌렀다. 다시 10분정도 오르니 더 기가 막힌

전망대가 나왔다. 발 아래로 소나무가 걸린 단애, 협곡이 이어진다.

이 좋은 경치를 즐기지 않고 올라만 가면 후회한다고 한참을 쉬면서,

과일도 먹고, 물도 마시고 30여분을 휴식을 취했다.

 

마지막 피치를 올려 능선에 닿으니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휴식처가 보였다. 주위에 보니 군인들이 보초근무를 하는 벙커가

2개가 있다.

군대에서 많이 보았던 통신용 삐삐선(유선줄)이 깔려 있다.

여기는 그만큼 최전방 고지다.

출발한지 2시간소요, 다들 지쳤는지 돗자리를 깔고 중식을 하자고 한다.

소나무 그늘에 빙 둘러 앉아 도시락을 순식간에 까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노곤하다. 시간은 아직 12시도 안 되었는데....

 

나는 오늘 확인하고 싶은 개구멍바위를 찾기 위해 서쪽 능선 길로 달렸다.

일행은 이산가족이 되어 급경사 너덜 길을 내려서서 1시간 내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서쪽 능선 길은 문배들 마을과 문암동으로 하산하는 코스.

20여분을 내려가니 군데군데 그 협곡의 정상을 잇는 아슬아슬한 능선이

이어진다. 여기가 밑에서 올라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 적벽인 것이다.

자세히 보니 <청량산>, <마이산>의 바위와 비슷하다.

돌과 자갈과 시멘트를 비빈 콘크리트 형태의 바위들이다.

떨어진 조각은 구들장 감으로 안성맞춤.

 

20여분을 달리니, 헬기장이 나오고 다시 급경사 하산길...

온통 바위에는 염소 똥들이 덮었다. 염소...??? 이 곳은

염소를 산에 방목을 한다.

드디어 커다란 전망대 바위에 올라섰다.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놈의 개구멍 바위는 안 나타나고.... 이상하다.

 

조금 더 내려가기로 하고 바위에서 내려서려는 순간, 아뿔사!

새까만 털 짐승인지 , 죽은 사람인지 뭔가가 삐삐선에 걸려져 있었다.

아이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뭘까????

자세히 정신을 차리고 막대기로 휘저어 보니, 썩은 냄새가 나고

파리 떼가 나른다. 형태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부패한 염소 시체였다.

방목한 염소가 올라왔다가 집으로 못 가고 그만 그 삐삐선에

발목이 칭칭 감겨서 죽은 것이었다.

 

그만 돌아설까 하다가 용기를 내, 그 놈을 비켜서서 다시 내려섰다.

구멍바위에서 보는 경치가 어떨까? 상상하면서 한 봉우리를 더 내려가

보았으나 허탕이었다. 다시 돌아서서 부지런히 구멍을 찾는다.

사람 발자국도 없는 등산로.... 가끔 오래된 표지기가 하얗게 바래

나부낄 뿐, 인적도 없는 산길의 연속이었다.

 

염소가 있던 전망대 큰 바위로 돌아와 보니 층층바위를 쌓은 것이

보였다. 여기가 수상하다고 한 팔이 넘는 크랙을 넘어 올라서니 뻥 뚫린

굴이 보이고 그 속에 구멍이 하트 모양으로 나 있었다.

여기다... 여기....

 

마치 큰바위 얼굴처럼 생긴 집채만 한 바위 속에 난 개구멍을 기어서

간신히 몸을 빠져 반대편으로 통과했다. 과연 개구멍으로 본 하늘과

구름과 한탄강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약속한 1시간이 다 되었다.

이젠 더 지체할 수 없다 . 뛰자.....

 

원점으로 달려가 잠에서 막 잠에서 깬 친구와 다시 동북 방향

정상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동북쪽 새로운 협곡의 시작이다.

능선에 매달린 소나무, 고목 외에는 작은 잡목이라 사방 조망이 좋다.

바위와 너덜길을 10여분 가니 바로 정상. 643M.나무로 만든

표지목(각흘산악회 세움)이 외롭게 서 있었다.

5년 전에는 이런 표시도 없었는데 이젠 제법이다.

 

 

발아래로는 하심재 마을과 한탄강의 푸른 물이 보이고, 북으로는 중리를

지나 철원 동송으로 넘어가는 325번 지방도,

건너편에 불무산(664M)이 황소처럼 누워 있고 남으로는 강 건너에

보장산(555M)이 연봉을 이루고 군소봉들이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다.

정상에서의 전망이 최고였다.

 

 

이 산은 계곡이 가팔라서 물을 구할 수 없다. 미리 많이 준비하라고 했는

데도 다 떨어졌다. 이젠 구경 실컷 했고, 충분히 쉬었고, 빨리 하산하는

게 좋다. 달리기 경주를 하듯이 잡목지대 <하심재> 안부를 지나

(이곳은 싸리나무와 들꽃이 많다) 큰 고목을 끼고 오른편으로 비탈길을

내려섰다. 30여분 만에 마을 입구, 더덕 밭에 닿았다.

 

밤나무 단지에 왔다고 환호하는 순간 숨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밤나무 주인이 막 새끼줄로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제기랄....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를 쳐다보면서 그냥 지나쳤다.

하심재 마을, '종자산 식당'앞으로 나와 오늘의 산행이 멋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거리 마을로 터덜 터덜 걸어갔다.

한적한 전방의 지방도로. 이따금 차 한대씩 지나가는 아스팔트길...

나는 이런 호젓한 길을 걷는 것이 감회가 남다르다.

(여기보다 더 전방인 대성산 XX사단에서 보병 GP근무)

 

모두 4시간 반 만에 원점에 도착. 영로상회 아줌마에게 밤을 두 됫박 사서

배낭에 넣고, ' 우리 집에 가서... 산에서 주웠다고 하자!'고 약속하고...

<종자산> 산행을 모두 마감했다.

 

이 주변 한탄강은 메기 쏘가리 버들치 등이 서식하며 협곡의 경치가

가장 좋은 곳. 하심재의 '깊은 산속 옹달샘'농원은 방갈로와 식당, 매점이

잘 갖춰져 있다. 들어가는 길이 1차선이라 불편하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차를 몰아 백이리, 전곡을 거쳐

소요산, 동두천, 의정부로 신나게 달렸다.

 

이제 풍요의 상징인 산밤 철이 돌아왔다.

추석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다음 주에는 차례상에 올릴 토종밤을 털러

가야겠다.

 

(동행자:임학권,이다혜)

2001년 9/18 일죽 산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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