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9. 00:55ㆍ카테고리 없음
천길 만길 절벽 위 <구련산>종주 산행
오늘은 5일째 일정표대로 순탄하게 소화하고 아침 6시 기상, 식사하고 6시 30분 출발이다.
일어나서 목욕탕에서 세수를 하는데 더운 물이 안 나오고 폭포수 같은 찬물이었다. 거울은 있는데 비누와 수건이 없는 싸구려 산장 <게스트 하우스>였다. 나는 일찍 일어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날이 훤하게 밝아 <구련산> 정상이 바로 코앞에 보였다. 정말 모양이 괴이하게 생긴 바위산이다. 한국에서는 못 보는 책꽂이 같은 층층계단 산이다. 아침을 먹고 7시 출발, 어제 내가 올라왔던 구룡제와 천문(하늘 문)을 지나갔다.
나는 첫 산행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맨 앞에서 걸어가면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들이 마신다. 처음에는 포장된 도로로 걸어가다가 산행 3시간을 지나니까 오른편으로 흙길--오솔길이 나왔다. 중국 사람은 아무도 못 보았고 가끔씩 염소 똥이 보이고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아찔하게 발아래 있었다. 벌써 해가 중천에 걸려 뜨거운 태양은 내리쬐고 사방은 참나무의 잎사귀도 안 나와 있고 작은 풀꽃만 무성하다. 아직은 이른 봄이다. 산허리를 빙빙 돌아 좁은 소로를 접어드니 겨울에는 사람이 안사는 화전민의 빈집이 나오고 돌과 나뭇가지로 길을 막아 놓은 데가 나왔다. 출입금지 구역이다. 장애물을 통과하려고 했더니 찔레나무가 앞을 막고 가파른 언덕길이라 넘어 갈 수가 없었다. 뒤에 따라오는 동료가 오기를 기다려 장애물을 치우고 통과하여 한 무리의 염소 떼를 만났다. 방목하는 야생동물이지만 반가워서 워--워 하면서 다가가보니 뒤에 젊은 목동이 가축몰이를 하고 있었다. 뿔이 달린 염소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고개를 돌려 경사진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두들 신기해서 사진을 박는다.
대낮 12시가 지난다. 아침 7시에 출발해 모두들 기진맥진--배도 고프고 야단났다. 내 뒤에는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지팡이를 짚고 오는 부인이 있다. 그분은 하도 더워서 중간에 몇 번 쉬고 왔는데 그만 안경을 어디다 놓고 왔단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는 안경인데...아깝지만 하는 수 없다. 그 때 저 멀리 건너편 산에 포장도로와 차들이 보였다. 가까이는 작은 동네가 보이고 묘지와 농사짓는 텃밭이 있었다. 일행은 돌밭 나무 그늘에 앉아 만두, 김밥과 닭고기를 먹고 오후 1시경 동네로 나가서 어제 타고 왔던 포차를 타고 <노제>와 <가포>를 거쳐 <왕방령>고개로 향했다.
쇠망치와 곡괭이로 판 <왕방령>구멍 터널
중국 중원지방의 거대한 <태항산맥>은 그 규모와 높이와 위용에 압도당했다. 사방에 우뚝 솟은 봉-- 봉-- 봉우리요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다.
4명이 나누어 탄 우리 차는 개미보다 작은 존재였다. 중국 사람들의 끈질긴 자연과 삶의 투쟁 역사가 보인다. 우리가 두 번째로 경탄하고 놀란 것은 그들의 무시무시한 땅굴을 파는 집념이다. 천길 만길 바위산인 <곤산> 800m--1700m 협곡을 오르기 위해 터널(굴)을 판 것을 보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수백 킬로의 굴을 우마차와 <빠오차> 한대가 지나 갈 만큼 크고 넓게 산판 노무자들이 삽과 곡괭이와 쇠망치로 뚫었다는 것이다. 구절양장-- 운전하는 운전기사의 솜씨는 아찔아찔해서 더욱 숨을 몰아쉬게 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운전하는 가 보다 싶다.
차는 평균시속 30km로 90도--150도 꺾어진 컴컴한 굴속으로 달리는 데 갑자기 커브 길에서 앞 차가 달려들어 아연실색했다. 아니--중국에는 시내에 신호등이 없더니 여기는 컴컴한 굴 속인데다 1차선 외길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일이 중국에서는 매일 벌어지는 것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건 운전기사 아저씨다. 우리나라 같으면 내려서 --‘ X새끼 너-- 죽고 싶으냐 ? ’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싸울 판인데 그들은 태연하게 대처했다.
몇 마디 주고받더니 우리 차가 뒤로 <백>하고 나서 차창 문이 달랑 말랑하게 비켜갔다. 정신이 바짝 들어 한참을 가는 데 또 앞차가 올라온다. 하마터면 충돌할 뻔 했다. 나는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뭐라고 기사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기사가 내리라고 한다. 결국 일행은 굴 속 도로를 걸어서 내려가다가 뒤로 내려오는 <빠오차>를 다시 올라탔다. 휴--살아서 돌아가는 구나 싶다.
오후 3시경 굴을 빠져 나와서 <왕방령>--제일 높은 봉우리 검문소에서 여권 검색과 통과료를 지불한 후 다시 돌고 돌아 1시간을 달려 내려왔다. 우리는 그새 <하북성>에서 <산서성>으로 넘어 온 것이었다. 오후 5시 태항산맥의 하나인 관산의 <곽량촌>마을에 겨우 닿았다.
너무 피곤한 하루다. 산 속의 장급여관 <귀빈원> 104호에 숙소를 정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에 7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중국어를 조금 알아듣기는 하지만 이때까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정말 수고 많았다(쩐더신쿨러)며 차에서 내리면서 정신이 들어서 기사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종일 혼이 나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