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운남성---창산 산행기

2010. 3. 21. 15:58카테고리 없음

중국 운남성 대리 창산 산행기

1 매


일시:2003년 3월13일(목)


2 매

참가자; 임학권,김양래,신철 3명



3 매
교통편: 리프트와 케이블카, 도보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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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백족의 천년고성 대리시를 수호하는 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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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3일 중국 여행 8일째 찬이슬이 내려앉은 새벽 7시, 구대리(舊大理)고성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 밤에 술
이 과하여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일행은 예정대로 오늘은 창산(蒼山,만년설,4500m)을 트레킹코스로 일
주하기로 했다. 말로만 들었고, 아무런 등산정보를 못 가진 우리 일행은 막상 출발하려니 겁이 나기도 한다.

아침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가야 한다. 한사람이 빠지면 여행에서 뭔가 이가 빠진 것 같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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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다. 대충 6시간이상 걸린다는 코리아나 하우스 민박집 사장님의 안내로 9시 정각에 창산 입구 리프트카
매표소를 찾았다. 1인당 30위안씩이나 하는 비싼 입장료와 이용료를 내고 리프트에 올랐다. (大理蒼山感通
有限公社)

리프트를 타고 아래를 보니 등산로가 보인다.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잣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최근 운남성(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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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省)과 유엔에서 돈을 투자해서 만든 리프트는 한국의 스키장 리프트와 유사하다. 오른편으로 멀리 산 중턱
에는 중국 사람들의 공동 묘지가 보인다. 무덤의 모양이 그들만의 특이한 양식인 돌로 기둥을 세운 형태다.
멀리 내려다보니 대리 고성(古城)과 열해(熱海)가 희미하게 보인다.

날씨가 찌뿌둥하니 안개가 자욱한 아침---찬 공기가 두 빰을 스친다. 30분만에 도착한 중화사(中和寺) 절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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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가 바로 하차장이다. 만일의 비를 대비해서 옷은 충분히 입었지만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래본다. 오늘은 처
음으로 산 속에 있는 중국 소수민족의 전통사찰을 보는 날이다. 곧바로 뒤편에 오르니, 오밀조밀 들어찬 대
웅전과 요사체들이 많다.

앞마당에는 시주하는 곳인지 향불(우리나라 보다 큰 화로에 붙인다)을 피우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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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을 한 좌대 위에서 앉은 대머리 불상이 환하게 웃는다.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배꼽을 내놓고 앉
아서 웃는 모습이 어딘가 장난기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별 볼 것 없다면서 곧바로 뒤로 난 좁은 길로 나간
다. 이 곳은 어느 서양인이 별장겸 모텔을 지어놓은 근사한 석조건물이 잇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아무
도 안 사는 것 같았다. 커피를 한잔하며 둘러보고 가려고 했지만 그냥 지나쳐 좌측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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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순전히 돌로 깔아서 미끄럽다. 그러나 콘크리트를 안 쓴 자연석으로 마치 구들장을 깔 듯 정연하게
정비되어 있다. 한참을 가다보니 평안문(平安門)이라고 쓴 문을 지난다. 20여분 미로문( 迷路門, 지그재그
로 빠져나가게 만든 기억자 통로)을 지난다. 10시30분, 삼거리가 나와서 한참을 기다려 어디로 갈까 의론을
하였다. 표지판을 보니 용안동(龍眼洞)과 풍안동(風眼洞) 푯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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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딜까??? 하고 머뭇거리는데 바로 앞에 허름한 집에서 한 아주머니가 황급히 나와서 우리를 부른
다. 얼씨구나! 싶어서 다다가보니 이산의 산림청에서 나온 직원(?)을 자칭하며 돈을 내란다. 가는 곳마다 돈
을 받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속수무책---결국 1인당 3위안(한화 450원)을 지급하고 풍안동을 찾아갔다. 워
낙 급경사라서 중도에 포기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왕에 돈을 준 거니까 보고 가자고 해서 10여분 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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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가 만발한 약수터가 나오고, 그 뒤로 200M더 들어간 곳에 통천문(通天門) 같은 풍안동이 나왔다.
우리말로' 바람의 눈 동굴'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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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눈,용의 눈을 닮은 자연석굴의 바람소리



하늘로 오르는 길인가 ? 좁디 좁은 통로를 간신히 몸을 빠져 오르니, 천길 절벽 위에 아슬아슬 하게 걸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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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구멍이 바로 풍안동이었다. 다시 내려서서 왔던 길로 하산하다가 용안동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꺾어 다
시 오른 용안(용의 눈) 동굴은 네모난 석굴이었다. 누가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자연석인 것 같기도 하다. 사
람이 겨우 들어 갈 정도로 뚫린 바위가 마치 벌집처럼 보인다.

여기를 들어가려면 긴 석교를 건너고 바위에 간신히 몸을 붙여야 하는 위험구간이 있다. 일행중 한명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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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기다리고 2명만 간신히 통과, 기념 사진을 찍는데 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주 위험한 협곡(峽谷) 위에 생
긴 굴이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석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우리나라 성황당 같은 곳이다. 돈통이 있
고 촛불을 켠 흔적이 보이고 작은 불상을 모신 곳이었다.

마침 일본대학생이 가이드와 같이 올라와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왔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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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 조여온다, 그만큼 위험하고 스릴이 넘친다. 내려오면서 이 곳을 안 갔더라면 후회했을 거라고 이구동성
(二口同聲)이다. 입장료를 이중으로 냈지만, 잘 선택된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벌써 11시 30분, 출발한지 2시
간이 경과했다. 사진 박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조금 전에 밑으로 내려다 본 천길, 만길 협곡을 끼고 만든 바위길을 지난다. 쇠파이프 난간이 그 위험도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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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다. 등산로에는 말똥들이 가끔 보인다. 이곳을 운행하는 치마가 멀리 보인다. 원주민들이 당나귀같은 말
로 태워다 주고 거리에 따라서 5위안도 받고 10위안도 받는다. 잘 정돈된 트레킹코스는 종이 한 장,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 이유는 이 곳 원주민 산림관리원들이 책임감 있게 청소를 한 때문이었다.

가끔 반대편 케이블카에서 올라오는 중국여행객들이 지나간다. 그러나 오늘은 한 사람도 말을 타지 않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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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서서히 걸어서 구경하며 간다. 우리도 마주친 트레킹 말들이 많았지만, 그 때마다 '뿌야오!! 부요!! '를 외
치며 구절양장처럼 굽은 소로를 부지런히 걸었다. 등줄기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낮 12시--배도 고파오고, 이제는 좀 쉬고 싶다. 1시간 가량 깊숙이 들어가니 우측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나왔
다. 여기에 뭔가가 있다싶어 돌계단을 오르니, 원주민 백족(白族)산림관리인 여성이 돈을 받는다. 입장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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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여기서 또다시 1인당 3위안씩 내고 통과, 때 마침 바람이 몰아치더니 빗방울이 후두둑 하고 떨어진다.



제7용녀지는 7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는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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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오르다 말고 뛰어내려와서 산림 관리인 집으로 피신했다. 10여분을 집안에 들어가서 뜨거운 향차(香
茶)를 마시며 대기했다가 날이 훤해져서 곧바로 이름도 멋진 칠용녀지(七龍女池)로 향했다. 우리나라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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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선녀탕이 7개가 있다는 뜻인가?. 제1선녀탕이 보인다. 마치 강원도 동해시의 무릉계곡 입구에 있는 마당
바위처럼 생긴 큰 바위 위에 쌍폭이 떨어지는 선경이 보인다. 와--- 드디어 창산의 비경을 보는 듯하다.

마침 비가 내려서 더욱 세찬 물줄기가 내리꽂는다. 하얀 바위에 파란 물이 인상적인 제1용녀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홍콩 여행객이 앉아서 간식을 하고 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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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쳐 제 2용녀지로 오른다. 여기서도 일행중 1명은 위험한 곳이 많아서 밑에서 대기시키고 오른다. 제2용녀
지는 제1용녀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앙증맞게 휘돌아가는 물줄기가 금강산의 옥류폭포와 비슷하다. 규모로
보아서 금강산의 폭포에 비할 것은 안 돼지만, 깨끗하고 오염이 안된 검은 석이버섯을 이고 있는 자연석 사
이를 흐르는 옥류(玉流)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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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제3, 제4 용녀지---우리만이 보기에는 아까운 비경이다. 사진을 찍고, 또 다시 올라 제5. 제6
용녀지를 지나, 마지막 제7 용녀지에 닿았다. 높은 곳에서 물줄기가 3단으로 10여M를 지그재그로 떨어진
다. 이 곳에서 30여분을 소요하고 다시 역으로 내려와 트레킹코스로 돌아갔다. 이제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났
다. 날씨는 더 어두워져서 이젠 빗속을 걷는다. 속력을 내서 남은 코스를 다 보고 가자고 달린다. 뒤를 돌아
보니 왔던 길이 협곡 반대편에 보인다. 군데군데 바위마다 중국사람들은 그 이름을 지어 암각을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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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앞사람만 보이고 안개와 농무가 끼어 잘 분간이 안 된다. 산 속이라 바람도 세차다. 미리 준비한 비옷
을 입고 힘을 내서 1시간여를 달려가니, 원주민의 말들이 줄을 서 기다린다. 우리는 케이블카가 있는 좌측으
로 바로 내려섰다. 비가 오니 빨리 하산해야 한다. 오늘은 애석하게도 명승지인 청벽계(靑碧溪) 폭포를 보
지 못했다. 이곳 케이블카 정상 부근에는 여기 저기 새로 집을 짓고 있었다. 대형휴게소나 모텔을 짓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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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비에 젖은 등산복을 입고 독일제 케이블카에 오르니, 따뜻하고 졸음이 몰려온다. 케이블카 아래를 내려다보
니, 바로 발 밑에 청벽계수가 흐르고, 빨간색 지붕의 정자가 보이며, 그 아래는 헬기장 만한 대형 장기판이
보인다. 중국은 지금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 지정하여 관광개발사업이 발돋움하는 소수민족 자치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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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현장이다.



중국 땅에 비행기로 와서 계림(桂林) 양삭(陽朔)을 거쳐 30시간을 기차를 타고, 곤명(昆明)에서 다시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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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달려 도착한 소수민족,백족 대리고성--- 수천년의 백족 역사를 지켜본 얼하이호수의 수호산인 창산을 주
마간산 격이나마 돌아본 일행은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어둑어둑한 대리 호국로 상가에 내리니 오후 3시였다.

끝으로 우리가 묵은 코리아나 하우스 레스토랑의 정원에 쓰인 옛 싯귀 한 구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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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29 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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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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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4.22 일죽 김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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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 선배님 산행기도 눈부신 발전을 보이시고 ,고생하셨습니다
▣ 일죽 - 감사합니다.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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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경 - 이런 멋진 트렉킹은 못하고 말만 탔지요 --다시 가야 겠네요
Me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