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3. 23:46ㆍ카테고리 없음
금강산 여행후기
기간;2002.10.22-24(2박3일)
주관; 한국언론재단 한국프레스클럽
<제1일: 10/22일(화)>
이번 여행은 한국프레스클럽의 각별한 배려(?)로 금강산관광에 참여하게 되어 모처럼
회사에 휴가원을 내고 부부 동반하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지난 15년을 신문사에 봉직하면서
정규 여름휴가기간 외에는 쉬지 않고 줄곧 근무하여 왔기 때문에 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일생일대의 휴가인 셈이다.
속초행 버스를 타야 하므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7시전에 태평로 한국
언론재단 건물 앞에 도착하니, 관광차 2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수은주가 갑자기 내려가 제법 쌀쌀한 아침이다. 버스 안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다. 버스2대는 인원 점검을 마친 후 정각 7시에 출발,
출근시간의 혼잡한 시내중심지를 빠져나갔다.
25인 승 관광버스는 자리가 넓어서 앉기 편하다. 복잡한 서울거리를 빠져나가 천호대교를 건넌다.
한강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비늘을 깐 것 같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자고
청명한 일기에 벌써부터 흥분된다. 왠지 이번 여행은 신혼여행만큼 설레기도 했다.
평일, 아침시간---주중여행이라서 그런지 교통소통이 잘 된다.
8시반 용문 용두휴게소에 잠시 들러 볼일을 보고, 모닝커피도 하나씩 들고 올라탔다.
여기저기 흩어져 앉은 일행은 소곤소곤 다정한 모습, 즐거운 표정들이다.
안면이 있던 분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며 즐겁게 달렸다.
여행안내서를 보니 첫날 일정은 속초항에서 '설봉호'를 타고 4시간동안 항해하여 북한 고성 장전항에 도착,
'해금강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서울에서 4시간 걸려 속초항에 도착, 통관수속하고, 탑승하고, 오늘은 종일 차 타고, 배타는 일이 전부다.
47번 국도를 따라 4시간여 질주 끝에 버스는 미시령을 넘어 설악 단풍을 뒤로하고 속초시내로 내려갔다.
이곳 설악산 단풍과 산세도 금강산 못지 않은 비경이다. 울산바위가 때마침 솟아오른 햇빛을 받아 검게
실루엣을 그리며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름답구나.'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마도 저 울산바위를 수백 개, 수천 개 모아놓은 곳이 바로 금강산이리라 상상해본다.
금강산 일만이천봉----봉봉봉.
11시반 속초항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도착, 짐을 챙겨 안내의 지시에 따른다. 좌석번호표를 받고 바로 승선,
웅장한 설봉호 갑판으로 올라갔다. 입구에 죽 늘어선 승무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금강산여행이 시작되었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필리핀 안내원이었다. 말도 서투르고 피부색깔이 까무잡잡하다. 1만톤급의 설봉호는
5층으로 된 거대한 여객선---얼마나 큰 배인지 1급호텔 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1998년 건조된 것으로 총길이가 114m, 폭이 20m, 시속 17.8노트의 쾌속정이란다.
400명을 수용하는 객실과 330개의 좌석, 승객 730명, 승무원 70명 최대 800명이 승선할 수 있다.
웬만한 폭풍이 불어도 끄떡 안 할 것 같다.
집사람은 배멀미를 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배를 타기 전에 매점에서 멀미약을 사 가지고 왔다.
차멀미는 안 하지만, 배멀미는 바닷바람만 쐬어도 골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호화여객선을 타보니 호기심이 나서 각층의 객실,레스토랑,나이트클럽,바, 로비, 라운지를 구경하느라 분주하다.
출항직후 모두 객실 안에 자리를 잡고, 지금부터 앞으로의 일정과 배 안에서의 행동, 구명대, 구명조끼
사용방법 등 소정교육을 받았다. 모두들 긴장과 흥분으로 경청하는 모습이다. 좌우를 둘러보니 젊은이와
아이들은 없고 50대 이상의 장년과 노년층이 대부분이다. 효도관광으로 금강산을 많이 찾아가는 것 같다.
나는 맨 위층 갑판에 올라가 속초 앞바다와 설악산을 구경하면서 '아! 드디어 꿈에 그리던 금강산엘 가게
되는구나!' 하며 쾌재를 불렀다.
육중한 설봉호는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 멀리 동해바다 한가운데로 항진했다.
갑자기 해풍이 불어와 추워지기 시작한다. 배는 앞뒤로 흔들리고, 그냥 서 있어도 좌우로 흔들린다.
다른 승객들도 하나 둘, 갑판에 나와서 이리 저리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망원경도 보고---
배는 점점 속력을 내며 항로를 따라 돌진했다. 파도가 뱃머리에 부딪쳐서 갈라진다.
천하 제일의 명산, 금강산은 어떤 색깔일까, 울긋불긋한 빨간 단풍산일까? 아니면, 벌써 낙엽이 쌓인 골산일까--
상상해보았다. 책에서 사진으로,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아온 금강산---점점 더 궁금해진다.
우리 부부는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뱃머리에 서서 북녘을 바라보며 찬바람을 쐬면서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마침 언론재단이사님과 직원이 올라와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며 스카이 라운지(?)에서
생맥주를 시켜놓고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었다.
이사님은 지난 봄에 한번 다녀온 금강산이라 더 흥분된다고 한다.
'봄에 갔을 때와는 또 다를 것 같다.'면서....
' 그때 처음 본 금강산은 역시 천하 제일이더라...'는 소감이었다.
날이 저물어 황혼이 질 무렵 드디어 장전항과 금강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객실에 앉아 있던 여행객들이 우르르 갑판에 나와 환호성을 지른다."와---"
드디어 입항준비 시간이다. 모두들 다시 객실로 들어와 입북 및 세관 절차를 안내받고
휴대금지 품목인 카메라(160mm 이상), 비디오(24배줌 이상),쌍안경(10배율 이상),핸드폰,밧데리 등을
개인별로 수거하여 별도 보관시켰다.
한민족--- 같은 한겨레면서 이런 번거로운 통관수속을 밟아야 하는 엄혹한 분단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모두들 신분증과 목걸이 (출입국허가서, 비자)를 목에 걸고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6시경에
하선을 시작했다. 조별로 나누어 행동. 한줄로 서서 북한군의 통제아래 입북수속을 마치고 숙소인 해금강
호텔로 들어갔다.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미리 대기한 금강산관광버스(현대차 제공)를 타고 온정각으로 향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온천욕은 생략하기로 하고, 곧바로 저녁 식사시간으로 들어간단다.
북녘 땅의 첫 식사---가 궁금했다. 뷔페 식으로 차린 식단을 보니, 서울의 평범한 일반
뷔페식당과 같다. 물어보니, 이곳은 현대상선에서 장만한 남한음식이란다.
서비스하는 아가씨들은 모두 필리핀 사람이었다.
이제 다소 흥분이 가라앉았다. 삼삼오오 저녁식사를 마치고, 온정각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려 상품을
고르기 시작한다. 우리도 빙 둘러보고,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았다. 북한산은 술종류, 전통차류, 산나물,
한약재, 동양화, 수예품, 꿀종류 등 토종농산물 밖에 없다.
2차,3차 산업이 발달 안된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낼은 7시 정각에 식사를 해야 한다.
강원도 고성군 장전항----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유일하게 떠 있는 선상호텔의 가벼운 흔들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제2일,10/23일(수)>
오늘은 진짜 금강산을 산행하는 날이다. 새벽에 자명종을 켜놓아야 했던 습관이 있어서 어떻게 일어날까
걱정했는데, 저절로 눈이 떠져 창밖을 보니 희미하게 금강산 자락이 보였다.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 집사람은 벌써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한다.
우리 부부는 27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직 한번도 그 흔한 해외관광 한번 못한 주제다.
나는 이번 여행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체면을 조금은 세우는 날이 아닌가 한다.
나는 씻는 둥 마는 둥 한 다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깨끗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휙--하고 들어왔다.
심호흡을 하며 오늘의 산행준비를 했다. 등산복을 입고 배남에 물병도 챙기고 카메라 점검을 한 후 식사를
하러 온정각 휴게소로 향했다.
새벽길을 달리면서 조장(가이드)의 자상한 산행안내를 들었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한꺼번에 올라가니까
조별로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젯밤에는 난리가 났었다는 것이다. 어느 관광객인지 모르지만, 김일성
기념비 앞에 조경석으로 갔다놓은 둥근 옥돌이 4개가 없어졌다는 것---이런 불상사가 있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당부의 말이다.
여기서부터 북한 땅이므로 행동거지에 조심조심해야 한다고,,,절대로 북한 체제에 대한 말은 하지말고,
더욱이 최근 미국의 핵개발금지 조치같은 예민한 사안은 대화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는
얼마든지 나와 있는 판매원과 환경관리원과 해도 된단다.
길가에는 군데군데 북한군이 모자를 쓴 채 도열해 있었다. 농촌마을이 나타나면서 학교 가는 학생들이 보이고
주민들이 자전거로 출근(?)하는 모습도 가끔 보였다.
우리 일행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쪽에서도 곧바로 응답이 왔다.
4년전 보다 북한 사람도 많이 달라지고 유연해진 걸 느낀다고 조장은 설명을 해준다.
우리 일행은 9시 정각 작은 버스에 분승한 후 왕복 4시간의 산행길에 올랐다. 온정각 바로 옆에 부서진 건물이
보였다. 이 건물은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의 휴양소(호텔)였는데, 노후해서 철거중이란다
. 북한의 첫 번째 건물이었다. 공연히 씁쓸한 기분이 든다. 10평 남짓한 돌집인 듯한데 즉시 다시 짓지 못하고
내팽겨쳐진 상태였다. 슬기(수레)너머고개를 넘어 금강송 단지와 배나무과수원을 지나 신계사 절터에 이른다.
지금은 기둥석 4개와 3층석탑, 부도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어 창연했던 절이 지금은 절터만
남고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9시20분 주차장에 도착한 후 조별로 산행을 시작, 첫 번째 관광코스인 200m 위 목란관(현재 공사중)앞에 도착,
화려한 북한식 치장을 한 금강다리 위에서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영상의 기온에 어제와 달리 하늘은 높고 햇빛이 눈부시다.
"얼마나 기다린 금강산인데 날씨까지 우리 일행을 도와주나!"
엊그제만 해도 궂은 날씨 때문에 그 좋은 구경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갔다고 아쉬워했다고 했는데 이번에
온 분들은 아주 행운을 맞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귀뜸해 주었다.
다리 밑에는 깨끗한 옥색의 물이 넘쳐흐르고, 눈부시게 흰 바위가 대조를 이룬다.
"아--이래서 옥류라고 하는구나!"
다시 한번 감탄하면서 목련다리를 건넌다. 수림대까지 오르니, 갈색 참나무와 빨간색 단풍, 노란 단풍이
눈앞에 다가왔다. 좌우로 험준한 바위를 낀 협곡을 옥류가 흘러 넘친다.
말 그대로 비경---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풍악산---가을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왼편으로 집선봉과 영춘대,세존봉을 뒤로 하고, 오른편에 가까이 관음연봉(상관음봉, 중관음봉, 하관음봉)
을 끼고 오른다. 금수다리를 건너고 장수샘물로 알려진 삼록수를 지나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구멍바위,
금강굴이 나왔다. 돌로 된 계단을 간신히 빠져나가니, 바위에 글을 새긴 판각이 보인다.
'푸른 소나무 영원히 솟아 있으리.--서사시 중에서
사람들이여! 무심히 쳐다보지 말라. 금수강산 삼천리에 푸른 소나무가...'
이런 류의 판각은 북한에서는 아주 자연스런 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자연훼손이니, 파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옛 선현들도 자기의 이름을 수도 없이 새기지 않았는가---
이런 전통문화를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여기서부터 신계동 구역을 지나 옥류동 구역에 드는 길이다. 달나라 토끼가 하루는 금강산에 내려와서
그 경치에 취하여 돌아가지 않자 옥황상제가 그 벌로 몸은 토끼고 얼굴은 입을 벌린 거북이형상으로 변하게
했다는 토끼바위와 옥화상제 바위, 자라바위의 전설을 듣는다.
수많은 바위마다 동물 형상, 사람형상으로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다.
옥류동--- 그 이름도 아름다운 옥류폭포, 옥같이 파란 물이 흐르는 계류 앞에 섰다.
파르스름하기도 하고, 연두빛이기도 한 계류위로 오색 단풍잎이 비추어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나는 넋을
놓고 바로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옥류담---- 작은 소는 너비6m,길이 10m, 깊이 6m, 큰 소는 너비9m
, 길이 30m,깊이 9m다.
남한의 설악산과 오대산,덕유산, 응봉산 계류가 깨끗하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순수할 순 없는 것같다.
나는 바위 한 가운데로 내려가 옥색, 비취색, 다이아몬드 물빛에 취하여 떠날 줄 몰랐다.
눈을 들어 주변 산을 쳐다보니, 금강산 주봉인 비로봉과 월출봉, 채하봉이 길게 연봉으로 펼쳐졌다.
이게 금강산이구나!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사방으로 병풍을 두른 듯 하늘금을 긋고, 산 중턱에는 푸른 소나무 숲과 울긋불긋
단풍나무숲이 들어섰고, 그 아래로는 커다란 소와 깊은 담이 휘두르며 돌아가고 있다.
무지개다리인 옥류다리를 건너니 곧 연주담이 나타났다. 돌다리처럼 비스듬히 누운 바위 위에서 연주폭포가
쏟아진다. 폭포바위는 대패질한 것 같이 매끄럽고, 폭포수는 길게 내리 뻗고, 용솟음치고, 돌아가고 제멋대로 흐른다.
한바퀴 돌아드니 곧바로 금강산의 4대 폭포(구룡포,12포,옥영포와 함께)의 하나인 비봉폭포가 맞은 편에
보였다. 세존봉 중턱에서 힘차게 물줄기가 떨어진다. 하늘에서 돌개바람에 휘말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비상한다. 바로 그 위에 무봉폭포가 봉황바위에서 떨어지며 봉황새처럼 춤을 춘다.
비봉폭포
강헌규
하늘에서 요란하게
풍악 잡힐 때
봉황새 춤추며
물었던 구슬
아차, 잘못 은하수에
떨어뜨리고
깜짝 놀라 저 뫼뿌리
날아서 내리나
비봉폭포 전망대를 지나 무용교(출렁다리)를 건너 오른편에 은사류가 흐른다. 여기서
두길로 갈라진다. 왼편으로 230m거리에 금강산 최고의 경승인 구룡폭포가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곧바로 직진, 하늘에서 8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상팔담 코스로 향한다.
경사 80도의 급경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와는 산세가 전혀 달라 노인들은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서는 곳이다.
절경인 상팔담을 보아야 진짜 금강산의 백미를 감상하는 것이다.
다시 힘을 내여 영차, 영차 힘을 내어 철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좁아 한사람밖에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쇠줄계단이 끝까지 이어진다. 여기는 800m이상 되는 고지에 오른 유일한 접근로다.
구룡대에 올라야 구슬을 꿰어놓은 것 같은 층층이 연결된 8개의 소를 볼 수가 있다.
20여분 젖 먹던 힘을 소진한 끝에 구룡대 바위에 올라섯다. 머리에서 가슴에서 등에서 땀이 흐른다.
사방 전망을 보니, 앞으로 비로봉(1116m)과 동쪽으로 세존봉( ),천화대( )칼봉,북서쪽에 옥녀봉( ),북쪽으로
관음연봉이 둘러쳐진 소나무와 바위지대였다.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깃든 상팔담이 눈 아래 천길 낭떠러지에 다소곳이 숨어 있다.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전설의 상팔담은 이런
고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흐를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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