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3. 16:55ㆍ카테고리 없음
청양 칠갑산 산행기
나는 청양 칠갑산을 드디어 다녀왔다. 충청도 천안부근이 내 고향이지만, 가까운 데를 더 모른다고 어릴 적에 말만 들었지 가볼 생각도 못했던 곳이다. 그런데 나이 60이 넘어서 처음 가본 칠갑산은 역시 인심 좋은 충청도 땅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나섰다. 집에서 사당동역까지는 1시간이 소요되므로 6시에 출발, 아파트를 막 나가는데 동네 분들이 운동하고 들어오면서 묻는다.
‘ 어디를 그리 일찍 가세요? ’
‘ 네---. 충청도로 가요...’
‘ 그렇게 멀리 가세요, 잘 다녀오세요.’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고 사당역에 도착하니 아무도 안 보인다. 이상하다 싶어서 출구를
왔다 갔다 했다. 분명히 한전 앞이라고 했는데, 여기가 한전 남부사무소가 아닌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총무에게 전화해보니 예술의 전당 쪽인데 공영주차장에 있단다. 거기에도 한전이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30분을 헤맸다.
일행은 부모님까지 모시고 온 집이 있어 모두 15명이나 되었다. 작은 버스 콤비 차에 딱 맞는 인원이 타니 널럴한 자리라 나는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창밖을 보니 상쾌하고 쾌청한 봄날이다. 판교, 분당, 신갈인터체인지를 지나---아파트가 숲을 이룬 오산시를 지난다. 들에는 과수원에 핀 배꽃이 화사하다. 산 속에는 산 벚나무가 군데군데 하얗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 우동을 한 그릇씩 시켜서 게 눈 감추듯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좋은 구경도 배가 고프면 안 된다. 벌써 8시가 되었다. 일정이 빠듯하다. 산행을 마치고 중식을 한 다음 덕산온천을 간다는 것이다.
인심 좋은 땅 충청도를 가다
차는 안성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음봉을 거쳐서 아산 현충사를 지나 남쪽으로 쉬지 않고 달려갔다. 드디어 충청도 내 고향에 온 것 같다. 온양은 어릴 적에 기차를 타고 와서 온양 역전에서 가장 가까운 청주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갔던 추억의 고장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6.25 한국전쟁 직후 배고픈 시절이라 무전여행(지금의 배낭여행 비슷한 것)도 많이 했고 기차는 통학하는 학생들로 초만원이었다.
한참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달리다 보니 예산 땅으로 들어간다. 이 부근은 요즘 도로를 새로 내느라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예전에 구불구불하던 국도를 곧바로 펴서 일직선으로 내고 있다.
우리는 신례원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사촌동생 부부를 태우고 청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사는 동생은 얼마 전에 위암수술을 해서 항암치료를 받았는데도 나온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몸이 무척 수척해 보인다. 기다란 호수같이 큰 예당저수지를 지난다. 전국의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낚시터다. 몇 해 전에 가야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저수지 옆에 있는 맛있는 민물 매운탕 집에 들러서 유명한 예당 음식을 먹었던 곳이다.
버스는 광시를 지나 조용한 마을 청양 읍내에 접어들었다. 한적한 도로변에는 빨갛게 핀 잔디, 패랭이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니 하천부지와 길가 가장자리에 일부러 심어놓은 것이다. 이 고장은 산에 있는 묘지 용머리에도 빨간 색 잔디를 심어 놓았다. 참으로 특이한 곳도 있다고 생각했다.
10시경 풀꽃 향기가 그윽한 봄 햇살을 맞고 도착한 칠갑산은 반갑다는 듯 우리를 맞아주었다. 칠갑산 도립공원은 1973년 지정되었고 4개면에 걸친 산으로 70헥타르에 이르는 울창한 삼림욕장을 가진 자연휴양림이 있다.
‘샬레’ 라는 모텔이 있는 오솔길을 지나 칠갑문에 도착했다. 돌로 축조한 성곽을 지나 화장실 옆으로 올라가니 넓은 광장 한편에 최익현선생 동상이 서 있었다. 초입에 등산로 안내판과 청양향약이란 간판이 보인다.
정심수기 효애제가 인보협동 향리자치(正心修己 孝愛齊家 隣保協同 鄕里自治--올바른 마음으로 자기를 다스리고 효도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며 이웃을 돕고 협동하여 고장을 스스로 지키자)라고 쓴 것을 보니 역시 충청도 사람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오늘 산장로 로 올라가 사찰로 로 하산해서 장곡사에 도착하는 3시간 코스를 택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늦어도 1시까지는 절에 내려서야 한다.
솔숲 향기가 솔솔 풍기는 오솔길
여기서부터는 평탄하고 완만한 오솔길이 나왔다. 화창한 4월 마지막 토요일이라 그런지 울긋불긋 등산복을 입은 수많은 등산객들이 앞을 다투어 줄지어 간다.
여기도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처럼 돼가는 것 같다. 이제는 전 국민이 등산동호인이 되어 어디를 가든지 대만원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먹고 살만큼 발전하여 도시 사람들이 휴일이면 모두 야외로, 산으로 나가는 새로운 여행 문화시대가 온 것이다.
조금 올라가니 한창 집을 짓는 공사판이 보인다. 뭐를 짓는가 하고 올려다보니 천문대를 짓고 있었다. 숲 속을 보니 남쪽 사면에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 주목, 오동나무, 자작나무, 싸리나무, 이팝나무 등이 울창하여 연둣빛 신록이 우거지고 이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길가에는 복사꽃, 산 벚꽃, 연산 홍, 진달래,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말 그대로 만화방창 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달려가 일부는 벌써 보이지도 않는다. 약 1시간 만에 중간 휴게소에 닿았다. 팔각정 2층에 올라가 앉으니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다. 일단 이곳에서 충분히 쉬고 다시 출발했다. 70이 넘은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천천히 가야 한다.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가면서 아무 탈 없이 산행을 마치기를 기도해본다. 한편으로 너무 과욕을 내서 오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30분을 더 올라가니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걸 느낀다.
지금부터는 마지막 구간이 나온다. 지자체에서 전에는 없던 나무 사다리를 해놓은 곳이라 정상까지 240여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 헉 헉--하며 숨소리가 난다. 젊은이들이 뒤에 줄로 서서 기다린다. 먼저 가라고 해도 어른을 앞질러갈 수 없다고 한다. 어머님은 힘이 부치는지 말이 없다. 계단 중간 중간에 쉼터가 있어 벤치에서 쉬었다가 가고 해서 숨이 턱에 닿아 정상에 도착했다.
와---소리가 절로 나온다. 헬기장 공터에는 벌써 많은 등산객이 올라와 쉬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린 다음 흩어졌던 일행을 찾아 단체로 기념사진도 찍고 ‘칠갑산 561m’ 라고 쓴 표지석을 배경으로 부부사진을 박은 후 곧바로 하산했다. 내려서는 길은 예상외로 급경사길이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지팡이를 짚고 내려가기에도 힘이 든다. 다리를 잘 못 쓰는 몇 사람이 쳐지기 시작한다. 안전하게 다치지 않고 내려가야 한다. 조심--조심해가며 한 발씩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길고 지루했다.
모두들 반대 방향으로 올라왔다면 끔찍했을 거라고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나무뿌리가 밖으로 나와 자연훼손이 많이 눈에 띈다. 칠갑산도 이제는 오지의 숨은 산이 아니었다.
고즈넉한 천년고찰 장곡사의 봄
오후 1시 30분 드디어 장곡사 사찰 지붕이 보이고 다 내려왔다. 3시간 30분 만에 종주한 일행은 배가 고프다고 야단났다.
장곡사는 칠갑산의 유일한 절로 신라 문성왕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사찰. 특이한 것은 대웅전이 두 개다. 일행은 벌써 대웅전에서 시주하고 나온다. 누구는 사진도 박아야 하는데....나는 바쁘다. 맨 꼭대기에 있는 대웅전까지 갔다 오니까 야단났다. 급히 서둘러서 미리 예약한 ‘황소집’으로 향했다. 이 집에서는 술은 구기자 술이 나왔다. 구기자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다.
이 집의 산채비빔밥이 꿀맛이다.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일어섰다. 잠시 화장실 갔다가 돌아와 보니 버스가 출발한다고 기다렸다. 막 출발하려는데 신발을 보니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이런---내 신발---하고 다시 내려서 20만 원 짜리 등산화로 바꿔 신었다.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잘 가시라고 한다. 충청도 인심이 이런 거 아닌가 생각한다.
등산은 끝나고 온천으로 갈까? 어디로 갈까? 의견을 들어보니 맨 날 집에서도 목욕을 하는데 예까지 와서 무슨 온천이냐고 이구동성이다. 우리는 차를 돌려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 고운식물원으로 갔다.
고운식물원은 청양읍 군량리에 위치한 개인이 만든 국내 최대의 식물원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기서 쉬고 가면 다리가 풀리고 예쁜 튤립 꽃과 야생화 군락지, 조각공원, 식물원도 구경한다. 시간은 2시간을 준다. 각자 흩어져서 경사진 오솔길을 오른다. 1990년 이주호(62세)씨가 야산 11만평을 개발해서 13년 만에 개장했고 7400여종의 식물을 다듬어 놓았다.
자연박물관인 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침 이 식물원의 생일이라서 돼지고기 삼겹살, 목살을 구워서 공짜로 먹는 것이다. 젊은 친구---대학생 신세용이 신이 나서 말한다.
얼마 전에 한겨레신문에 나왔다고 한다. 이미 알고 왔지만, 이제 막 개장해서 홍보가 중요한 것이다. 멀리 대전에 여기까지 와서 알바를 한단다.
오후 5시에 구경을 마치고 다들 피곤한 가운데 차는 쉬지 않고 달려 죽전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 씩 비운 후 사당역에서 헤어졌다. 밤 9시 어둠이 서울은 대낮처럼 밝았다.
하루 만에 다녀온 충청도 땅은 가볼만한 모처럼 즐거운 여행이었다.
2007,05.02 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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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칠갑산으로 콩밭매러 가시는 산님들이 많으세네여? ㅎㅎ 청양하면......매운고추 청양고추의 고장! 마냥 그고장에 들어서면 산새도...마을들도...온순해 보이고 하져?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
2007-05-04 10:2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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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림. 거기 청양고추는 못 갔지요.... 고추 마을이요.바로 옆인데여..... 일죽 |
2007-05-04 22:20: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