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3. 21:22ㆍ카테고리 없음
2000/03/03
< 관산 555m 산행기>
제목: 낙엽이 수북이 쌓인 이름 없는 슬픈 산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보거나 여러 형태의 산을 보며,저기는 왜 저렇고, 여기는 왜 이럴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산세가 빼어나면 계곡도 깊고 뭐 아름답지 않은 데가 없다고 하겠다.
경기도 광주군 에 다소곳이 숨어 아무도 부르지 않는 고요한 적막에 쌓인 관산은 슬프디 슬픈 노천명의 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내가 가 본 느낌이다.
서울 근교에 그 많은 산중에 왜 이 산만은 찾는 이가 없을까? 그러니까 무명산이지 하고 위안을 삼는다 .광주군 퇴촌 하면 천주교인은 금방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을 떠올릴 것이고, 식도락가는 분원리의 붕어매운탕을, 예술에 조예가 있는 분은 분원의 도자기 가마를,또 누구는 그 유명한 보신탕집을 떠 올릴 것이다.
그러나 산꾼에게는 이 부근에 산재한 나즈막한 동산을 연상하게 된다. 이름하여 정암산, 해협산, 앵자봉, 관산, 양자산,무갑산을 들 수 있다.
모두 500M ---600M 사이의 육산에 속한다. 그렇게 높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으니 여기를 굳이 찾아올 객이 있겠는가 싶다.그러나 어느 산에 가 보아도 유독 자기만이 고집하는 산이 있게 마련, 그렇게 한 사람도 못 만나 슬픈 산인데도 거의 매주 마다 찾는 이들이 있어 위안이 되기도 한다.관산은 그런 산 중의 제일이라 해도 서글프지 않다. 미련한 듯이 뻣은 능선 길, 수북이 쌓인 낙엽, 잔나무가 무성한 숲, 완만한 경사,그저 생긴대로 서 있다.
육산에도 여러가지 모양이 있다. 정말 작은 구릉같다. 어디가 정상이랄 것도 없다. 나는 예의 퇴촌면에 있는 산을 대충 섭렵해 보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지 않는다.그 만큼 특징이 따로 없다. 여러해 전 여름에 그 천진암 들머리인 우산리에서 우회전해 들어가,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연수원에 주차하고,바로 왼쪽 능선을 타고 종주했다.일단 능선에 오르니 사방으로 이어진 연봉들이 보인다. 모두 한 산인 것 같다.계곡쪽으로 하산하니 곧 연수원 계곡, 깨끗한 물이 철철 넘치는 작은 개울 옆에 두줄타기 훈련장이 있었다..
여기서 타고 놀다가 관리인 한테 혼나고 내려온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연수원 관내라 우회해야 하는데 그냥 내려선 것이었다.그제서야 알았지만, 관산은 그냥
직등할 게 아니고, 계속 돌고 돌아 앵자봉과 양자산까지 종주하면 하루의 산행으로 제격이란 걸 터득하게 되었다.
맑고 깨끗한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산이었다. 진짜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미 넘치는 고즈넉한 곳이다.고요한 산에는 조용한 사람이 찾으면 된다. 벼슬 관자 관산은 저 시골의 선비에게나 맞는 수줍은 산이라는 걸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홀로 고독을 씹으며 걸어가고 싶은 분은 가을이 저무는 낙엽의 계절에 조용히 입산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0. 03.03 일죽 산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