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보내는 편지---2007

2009. 5. 1. 21:40카테고리 없음

마누라에게 바치는 편지 2


         2008년  나의 작은 소망


금년 무자년 쥐의 해 2008년은 어떨까? 참으로 막막하다...

작년 한해는 내 일생의 99 고개 중 또 한번의 커다란 고개를 어렵게 힘들게

넘었다. 1975년 3월 내가 결혼할 때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마누라를 위로하면서 했던 변명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 어려운 나의 단독 결정에 대한 우회적인 핑계와 아울러 위로의 말이었지만 마누라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나는 그 후로 수없이 많은 실직과 가난과 사망과 좌절의 고개를 넘어왔다.

1967년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장교로 군에서 제대하면서 동아일보에 취직하자마자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를 차례로 5년 동안 내리 잃고 나는 6남매의 장남으로서  하루아침에 결손가장이 되었다. 이러할 때 시집이라고 와서 평생 나와 시동생들, 3아이(아들 둘, 딸 하나)들 뒷바라지만 하다가 평생 동안 모질게 고생한 보람도 없이 작년에 56살로 한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아내는 내가 한겨레신문에서 정년퇴직하자 갑자기 몇해 전 파킨슨씨병 증세가 있어서 아파트의 정원에 나가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려고 99고개 이야기를 했지만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는 어려운 99고개를 다 넘기고 좋은 일만 남았다고 했더니 피--하며 웃었다. 그 고개를 다 넘긴 것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과 내 인생과 내 운명이 왜 이다지도 모질고 못나고 못 생기고 험난한지 원망을 하게 되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주어진 필연적인 숙명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나는 평생을 동아일보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속고 살아왔다. 그런데 마누라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집 와서 나에게 철저히 속았고 끝내는 사기 당해 죽었다.


 작년 3.19일 마누라는 내 생일날 아침 7시에 저 세상으로 갔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 우주의 맞춤, 하느님의 형벌이 아닌가 한다. 기가 막히다---. 내가 지은 원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돌아오다니--- 나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 친 것이다...




그후 나는 내면적으로는 동요하고,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울부짖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넘어지면서 술로 1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서는 태연한 척하고, 아픔이 없는 것처럼 모든 걸 초연한 척 했다.


오늘은 길고 암울하고 험난했던 한 고개를 넘긴 2007년이 가고 새해의 태양이 다시 떠올랐다. 새벽 7시 50분 나는 용마산 정상에서 영하 7도의 맹추위 속에 일출을 맞았다. 내가 저 붉은 해를 볼 자격이 있는가 물었다. 자책감과 부끄러움과 송구함을 느꼈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또 다시 하나의 99고개가 기다리는 한해가 될 것이란 예감이다. 그렇다. 인생의 고해는 지속되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과 꿈과 소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행복하고 살만하고 나아진다는 막연한 기대치로 일생을 마감한다.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을 갖는다. 그래서 올 한 해도 속고, 속아가며 참고 인내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속으로 삭이며 살아갈 것이다.

새삼 마누라에게 미안했고 할 말이 없었고 변명하지도 못하고 홀로 가슴에 칼을 꽂고 넘긴 2007년이 역사의 한 페이지 뒤로 사라진다.


이제는 앞만 바라보고 뛰다가 넘어져서 갈 때까지 한 길로 매진하고 내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하루도 나태하거나 편안히 쉴 틈이 없다.

다만 내 생각과 말과 행위로 모든 앞길을 개척하고 추진해보자...

올 한 해 우주의 운행도 나의 의지와 말대로 생각대로 잘 되느냐는 운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불쌍한 마누라여...맹추위에 잘 있게나...


                  2008.1.1       요셉  김양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