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8. 12:21ㆍ카테고리 없음
유기열의 씨알여행 49-벚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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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보내는 빛깔잔치 초대장
벚나무는 감상하기에 따라 여러 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첫째 꽃의 아름다움이다. 봄날 활짝 핀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걸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으리라. 나비가 춤을 추는 듯하고, 눈꽃 비가 흩어지는 냥 하며, 선녀들이 옷을 찢어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짧지만 환상적이다. 며칠 못가서 꽃이 진 주위에 신록의 잎이 입을 삐죽삐죽 내밀기 시작하면 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이듬 해 봄이 어서 오길 기다리게 된다. 둘째는 가을 단풍의 빛깔이다. 단풍 진 벚나무 길을 걸어보라. 형형색색의 단풍이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다. 갈색 잎은 수수한 시골 아줌마 얼굴 같고, 노란 잎은 놀다가 한 바탕 땅에 뒹군 병아리마냥 귀엽다. 빨강 단풍은 어떤가? 가을 햇살이라도 내려앉으면 불이 타는 듯 정열적이다. 그뿐인가? 불타다 생에 무슨 미련이 있는지 다 타지 못한 검붉은 잎을 보고 있노라면 힘들어도 사는 게 죽느니 보다 나음을 온 몸으로 말해주는 엄숙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생각을 하며 걷다 바람에 색 종이처럼 흔들거리는 단풍잎이 머리 위에 떨어져 꽂히기라도 하면 그 어떤 명품 악세 사리가 부럽지 않다. 이런 낙엽을 연인과 함께 밟으며 걸어보라. 공주와 왕자 된 기분에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셋째는 다 벗어던지고 다시 올 봄을 위하여 겨울을 준비하는 나목(裸木)의 숭고함이다. 벚나무는 병해충을 막고 겨울동안 모질고 지독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하여 유액(油液)을 껍질로 내보낸다. 수피(樹皮)가 기름기를 머금으면 은색과 흑색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묵화(墨畵)같다.
그런가 하면 안으로 힘을 모으며 뿌리로 힘을 내리고 어떠한 도전에도 맞설 기세로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히 기대고 싶어진다. 옆에 서 있기만 해도 포근하고 안정이 되며 희망을 얻을 것 같기도 하다. 다 벗어던지고 빈 몸으로, 찾아오는 이에게 희망을 주는 벚나무 길, 나는 그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 넷째는 오색 열매가 벌이는 빛깔의 잔치다. 열매가 익기 시작하는 5월 하순에서 6월 상순에 벚나무에는 빨강, 초록, 노랑, 주홍, 검정 등의 다양한 색을 띤 열매가 향연(饗宴)을 벌인다. 열매는 익을수록 초록(녹색) → 연두색 → 노랑 → 주황, 주홍 → 빨강 →적갈색 → 검정으로 변한다. 유난히 열매 수가 많고 맺는 시기가 다르다 보니 한 나무에 이런 오색의 열매가 동시에 달리게 된다. 이때 가지가지 색깔들의 열매는 저마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면서도 상대를 드러내며 조화를 이루어내는 데, 이런 멋진 아름다움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다. 이런 빛깔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가슴 설레지 않으면 살아있음이 무의미하다.
1개의 열매에는 1개의 씨가 들어 있다. 양 끝이 다소 좁은 둥근꼴의 타원형이다. 흰색에 가깝지만 오래두면 갈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씨 표면에는 갈비뼈 모양의 능선이 여러 개 나 있다. 크기는 길이 5~8㎜, 너비 4~7㎜, 두께 3.5~6.0㎜정도다. 벚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때에 맞게 꽃, 단풍, 열매, 나목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멋을 부려보자. 일상 보는 가까이 있는 사물도 관심을 가지면 다르고 새로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