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6. 18:58ㆍ카테고리 없음
귀농인,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글: 최성현 그림: 이우만
도솔출판사 간.
노란색 표지에 <산>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쓴 이 책은 나에게 그<산>에
금방이라도 오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자다가도 <산...>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그 <산>에 매료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귀농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준 아주 드문 인물이었다. 먼저 그의 약력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찍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근무하던 중 일본인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 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하루 만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1988년
전화, 전기도 없는 강원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5년간을 원시생활로
살았고, 38살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신문배달을 한 후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로 건너가서 3년 동안 버려진 땅에 야채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아직도 산 속에 산다.
농사를 손수 지어서 자급자족하며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숲 지킴이로써
프랑스의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를 닮은 한국 생명농업의 대부이기도 하다.
그의 오두막집(바보 이반 농장) 입구에는 이런 <알림> 문구가 붙어있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농장의 주인이 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풀, 나무, 벌레, 새, 동물, 흙, 돌, 물, 물고기가 다 형제자매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문구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대자연은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참생명
지킴이 “바보 이반”이다.
그는 첫 장 <산으로 가는 길>에서 “사람의 길과 산의 길. 산에는 풀, 나무, 곤충,
새, 야생동물, 민물 생물들이 열쇠와 돈과 책과 무기를 만들지 않고 살고 있다.
그것을 가진 인간과 그들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바보일까? “ 하고 묻는다.
그는 철학 전공자답게 글도 잘 쓰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한다. 그러나 전혀 배운
티를 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다. 숲이 인간에게 주는 가르침을 깨우친 모습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그는 말한다. 산에서 정지한 채 누워서 하늘을 보라, 그리고 엎드려서 땅을 보라.
그러면 서서, 걸어가면서 보는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델라웨어 족 인디언의 <상처 입은 가슴>처럼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것을 권장한다.
제2장은 풀과 나무, 산나물에 대한 평이하고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가득하다. 우리가
이론으로, 혹은 책으로 배우는 이상이 담겨져 있다. 이어서 곤충, 산새, 야생동물
, 민물고기로 이어지며 끝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는 문화>에서 “ 우리가 우리 후손
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어떤 큰 건물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땅과 물과 공기와
숲이라는 것 “을 강조한다. 신생대 4기에 사는 지구인이 할 일은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의 하나로서 자연이 주인이 되는 길이다.
대부분 내용은 나무와 풀, 곤충, 동물의 그림과 함께 생물도감을 풀어 쓴 것이지만
그는 지루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가진 생명작가임에 틀림없다.
311페이지.ㅣ2003년 6월 씀.
***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와 함께 숲 해설가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