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4 전에 아무 것도 모르고' 친구 따라 강남으로 간' 산입니다. 남한의 최고봉인 지리산과 한라산을 정복한 것입니다. . 여름방학을 맞아 그 때 유행한 무전여행을 갔습니다. 돈 한푼도 없이 가고 싶은 데를 갔다 오는 그런 여행을 말합니다. 지금의 배낭여행과 비슷한 것입니다.
7월달 뙤약볕이 내리쬐ㅡ는 어느날 고등학교 졸업 동기생이 대학도 들어갔겠다 실컨 놀아보자고 공모해 가출을 결심하고 서울역에 모였습니다. 지금의 배낭여행보다 더 짜릿한 가출이지요.....
한달 먹을 반찬과 쌀을 가지고 오기로 했고,돈은 한푼도 가져가면 안 되었습니다. 서울역 시계탑앞에서 만나보니 모두 6명이 모였는데 한 친구가 한달 먹을 쌀 가마니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하도 기가 차서 " 야. 너 그거 어디서 가져온거야.
너 뒤주에서 퍼왔지?"하고 따지니까, 그 친구 " 엄마가 여행 간다고 하니까, 가지 말라고 해서, 새벽에 몰래 쌀가마를 메고 뛰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종로 4가 연건동에서 말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 친구의 양팔이 시퍼런거 있지요. 쌀이 얼마나 무거운지 완전히 허리가 90도는 앞으로 구부러져 있지 않아요.
기차표는 누가 먼저 와서 사놓은 것................
칙칙 폭폭 기차는 달리고, 우리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흥분을 가라않히고 차안에서 쌀 가마를 풀러 6등분을 해서 각자의 군용 배낭에 나누었습니다.
바로 검표를 받게 되었습니다. 차표를 보니 영등포까지만 끊은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각자 알아서 해!" 대장의 지시로 일제히 흩어졌습니다. 기차는 굴을 몇개를 지나가고 대전역을 지나 어딘가 달리고 있는데, 또 검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밀리고 밀리다가 이리역(지금의 익산)에서 일단 내리기로 했습니다.
캄캄한 역에 내려서 친구를 세어보니 6명이 다 있었습니다.누군가가 "나가면 걸려. 여기 플랫홈에서 자고 내일 새벽 첫차로 가자."고 해 어둑컴컴한 구석에 드러누워 총총한 별을 쳐다보며 새벽이 오길 기다렸습니다.모포를 뒤집어 쓰고 눈만 내놓고 잠을 청하는데,어디서 날라 들엇는지 "왱왱"소리가 나더니 모포속으로 마구 물어대는게 있었습니다.
이리(지금의 익산) 모기--- "야. 여기는 도저히 잘 데가 못 된다." 하나 둘 모기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때 역무원이 후래시를 갖고 순찰을 돌다가 우리를 발견," 학생들 여기서는 못자!'하면서 객차로 안내해 따라갔습니다. 거기는 이동매점의 종업원 숙소였습니다.자세히 보니 거지들도 많고, 험상궂은 깡패도 보였지만, 그들과 함께 자기로 했습니다.
이 시간이 새벽3시.우리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세수도 못하고,첫차를 타고,전주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가다가 개구멍을 발견,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일행이 모두 용하게(?) 역사를 빠져나와 남원을 거쳐 마천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드디어 대망의 지리산 종주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흥분하기 시작, 출렁출렁 매달린 구름다리를 건너,백무동까지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백무동은 산 중턱으로 모든 생필품을 지게로 져 날라 먹는 화전민 촌. 우리는 개울가에 A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자려고 하니 하늘에 별은 총 총하고 이름 모를 풀벌레소리에 잠이 안 왔습니다. 서울의 부모님 생각, 애인 생각, 별의 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다음 날 거뜬히 일어나 5만분지 1 지도를 펴고 색연필로 등산로를 그려가지고,지금의 한신 계곡을따라 가다가 하동바위로 올라갔습니다.온몸이 땀에 절어 빨래를 해 널어서 말리고,밤이 되면 자면서 오르고 또 올라갔습니다.그런데 산판과 목재소를 지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길 줄이야.
적막강산에 , 점 점 뒤쳐지는 일행이 생기고,지쳐서 쓰러지는 친구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휴식을 하면서 세어보니 2명이 안 보였습니다. 앞으로 간 건지, 뒤에 쳐진 건지도 분간할 수 없는 우리는 무작정 그 자리에서 기다려서 소리를 질러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절을 기다려도 무소식,그때서야 공포감과 함께 호랑이에게 물려 죽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시락 소리가 난 것 같아 자세히 들으니 신음소리가 들려 " 살아 있구나! 살았다."환호성을 지르고 찾아보니, 온몸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마트면 무전여행 왔다가 두 친구를 잃을 뻔했죠....
우리는 물을 떠다가 끼얹고, 주무르고 해서 겨우 정신을 차리게 하고 물으니,개울울 건너야 하는데 그냥 직진, 가다 보니 길이 없어져 그 때서야 잘못 들었다는 걸 알고,우왕좌왕하다가 무서워서 다시 내려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입술을 보니, 분말주스를 마구 삼켜서 혓바닥이 벌겋게 딸기색이 되어 있었습니다.여기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다시 출발, 만 4일만에 장터목, 고사목지대를 지나. 어둑한 밤에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텐트를 치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수염이 긴 할아버지가 새벽같이 올라오시고, 다른 등산객이 올라와서 같이 식사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돌무더기 움막에서 하루를 쉰 다음 감격의 천왕봉(1915m)을 뒤로 하고 하산, 법계사를 거쳐, 중산리로 뛰다시피 내려갔습니다.
하루만에 내려선 것은 호야통에 넣을 석유가 떨어진 때문이기도 하고. 하루 한번 있는 진주행 버스시간에 대야하기 때문. 점심도 거르고 굴르다시피 달려내려 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이날 밤 우리는 기진맥진 한 몸으로 처음 민박집에서(가게) 자는 기쁨을 맛보았고, 또 부모님이 해주신 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만 4일을 오르고 만 하루에 하산 완료,마을 까지 도착,전원이 무사히 종주산행을 한 것입니다.
대학 1년생의 무전여행, 무전취식, 무모한 산행이 마감되는 순간...다음날 버스시간 까지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실컨 먹은 추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 악몽의 지리산이 2007년 지금은 해마다 수만명, 수십만명이 다니는 고속도로가 되어 있으니 금석지감이 있습니다. 그후 우리는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가서 돗단배를 타고 제주도로 잠입해 (바다에서 2일간 조난당함),한라산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남한의 최고봉 2개를 난생 처음 타본 경험담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은 배 고팠 던 그때, 그 시절을 충분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일죽 산사람 김양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