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축령산 산행기

2007. 5. 25. 20:40카테고리 없음

축령산 초여름 산행기

                                                   김양래(숲맹이)


 

전 전날 오랜만에 봄비가 와서 산과 계곡이 말끔히 청소된 듯 일요일 아침 수유리 역은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룬 전철이 지나갔다. 대부분 도봉산이나 북한산, 소요산, 고대산 방면 등반객이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25인승 콤비 버스에 올랐다. 정동익 선배님, 박선생님, 박영택 전대장 등 반가운 얼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분도 많았다.
초여름 아침 9시반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며 모두들 들뜬 기분으로 서울을 빠져 나간다. 차가 막히지 않아 버스는 최근에 새로 난 경춘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마석 인터체인지까지
미끄러지듯이 잘 빠진다. 마석시내를 지나고 천마산 허리를 돌아 가곡리, 수동을 거쳐 석고개와 외방리 입구를 거침없이 387번 지방도를 통과했다.
새로 생긴 우회로로 들어서서 작은 터널을 지나니 갑자기 차를 막는다.
어이쿠--
벌써 전국에서 몰려온 상춘인파 때문에 차가 주차할 수 없을 정도란다. 역시 서리산 철쭉이 유명하긴 유명한 것 같다. 우리 산악회에서 이번이 3번째인데 그전에는 안 그랬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 국민이 산악인이 된 것이다. 2년 동안이나 산을 못가 본 나로서는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다.

시간은 벌써 11시다. 하는 수 없이 고갯마루에 일렬로 차를 세우고 오늘 먹을 양식(김밥,물,소주,안주 등)을 각자 배낭에 나누어 걸머지고 2km나 되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갔다. 화창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늘의 서리산, 축령산 종주 등산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잘도 간다. 길가에 핀 야생화와 풀꽃과 장승을 구경하며 부지런히 휴양림 매표소에 닿았다.
휴---벌써 지친다. 오늘 처음 오는 분도 있는데 아침부터 기운을 뺀다.

녹음이 우거진 산을 올려다보니 온통 초록빛,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파랗다. 왼편으로 외방천 계곡에 물이 넘쳐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이름 모를 산새가 조르륵하고 지저귀고 있다. 왱왱 날아다니는 꿀벌이 내 얼굴을 마구 공격한다.
여기서부터는 갑자기 통나무 숲속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이 급경사다. 구절양장 아스팔트길을 돌아 쉬지 않고 힘겹게 올라 물레방아 약수터에 당도하니 숨이 턱에 받친다. 제1주차장과 통나무집들이 둘러쳐진 등산로 입구에는 벌써 하산하는 등산객들도 보였다.
장대장이 긴급히 일행을 불러 모으려 했지만 벌써 선두가 오른편 수리바위 코스로 올라간 후였다. 축령산(877m)--서리산 종주하려면 총 8.7km 약 4시간이 걸린다. 일행이 두 패로 갈린 것이다. 힘이 든 몇 분을 고려해서 점심은 언제 어디서 먹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휴대전화로 연락해서 15명은 축령산 코스로 돌고 나머지 11명은 왼편 임도로 올라가 축령산과 서리산 중간에 있는 절고개에서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일찍이 인공 조림한 이 곳 축령산의 잣나무 숲은 수령이 50년 이상 된 것이다.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전남 장성의 축령산 휴양림과 이름이 같아서 혼돈하기 쉽다. 수고 20m가 넘는 울울창창한 잣나무 숲에서 뿜어 나오는 방향물질인 피톤치드가 1년 중 5-6월이 가장 왕성할 때다.

이 산이 삼림욕장으로 서울 근교 산 중에서 유난히 사랑을 받는 산이 된 이유가 되기도 하며 능선이 칼바위로 이루어진 바윗길과 수리바위, 남이바위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다. 봄의 전령 핑크빛 철쭉, 여름의 쪽빛처럼 짙은 녹음, 가을의 깨끗하고 화려한 단풍, 겨울의 은백색 스산한 통나무집 풍경이 등산객을 매료시키는 곳이다.

나는 후미에 있다가 절고개 방향 팀에 합류했다. 예전에는 물레방아 약수터 물도 먹었는데 오늘 보니 손만 씻으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간단히 손만 씻은 후 잔디광장 코스로 오른다.한참을 올라가니 홍구세굴 등산코스 입구가 보인다. 저 길은 몇 해 전에 등산초심자를 안내할 때 올랐던 길인데 축령산에 오르는 길이지만 잘 이용되지 않는 코스다. 사람들이 너무 안 다녀서 조금은 무시무시한 길이기도 하다.

첫 번째 삼거리 임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얼굴과 등에 땀이 많이 흘러서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시원한 숲 속으로 들어섰다. 자연 그대로 뒹구는 고사목들....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들... 그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생명이 가득하다. 나무껍질 속에 알을 낳는 사슴벌레, 축축한 나무속에 집을 짓는 흰개미, 죽은 나무의 영양을 먹고 자라는 버섯 균 들이 살고 있다. 숲은 죽음을 통해서 더욱 풍요해진다고 한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잔디광장 옆을 지나 절고개로 향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숲속이 콧속부터 상쾌해진다. 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피부에 닿으면서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숲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숲은 나뭇잎의 탄소동화작용에 의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주고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공기정화기이며 오염된 물을 1급수로 만들어주며 소양강댐의 10배가 넘는 물을 저장해주는 녹색 댐(Green Dam)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원이다. 숲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산이다.
나는 다시 한번 숲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느낀다. 산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사실 뭐라고 꼬집어서 대답할 게 없다. 그러나 산에 가보면 알 게 된다.

우리 일행은 절고개 바로 못미처에 커다란 잣나무 숲 속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 1시30분이다.  먼저 올라간 팀이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30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한다. 일행은 일단은 돗자리를 펴고 기다리기로 했다.
김밥과 각기 갖고 온 음식이 펼쳐지고  즐거운 중식시간이 시작된다. 먼저 오른 축령산 팀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간 상 먼저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자연히 술이 한 순배씩 돌아간다. 그런데 막걸리를 가져온 분이 별로 없어서 금세 동이 났다.

오늘 처음 오신 원영애(국립극단 단장) 씨에게  노래 요청이 들어가고 숲속의 요정이 간드러지게 노래를 부른다.

봄날은 간다..................
1,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흰구름 흘러가는 신작로길에
새가 놀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3,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 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조용필, 장사익의 노래....아----얼마 만에 들어보는 처량한 곡인가!!!!
앵두같이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멋들어진 노랫가락에 모두들 혼이 나갔다.

나는 먼저 간 일행을 걱정해서 장대장과 함께 절고개로 올라가서 대기했다. 넓은 삼거리에는 많은 등산객이 내려와서 그늘에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가 쉴만한 그늘이 하나도 없다. 아직 한 사람도 도착하지 않아 한 참을 기다려서 두 팀이 합류했다. 오후 2시 30분이다.
축령산 종주코스를 넘어온 일행은 배가 몹시 고프다. 나무 그늘에 모두들 자리를 잡고 푸짐한 중식 파티가 벌어지고 이어서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누군가가 내려오면서 참나물을 한 움큼 뜯어 와서 오곡밥에 맛있게 상추쌈을 싸서 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놀다가 오늘 서리산을 돌아서 내려갈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놀다 보니 벌써 오후 4시가 되어 간다. 올해는 아직 서리산에 철쭉이 피지 않아서 포기하기로 하고 하산했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은 나에게 추억의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전 6월 어느 날 등산친구가 4인용 텐트와 깔판, 코펠, 버너 등 등산 장비 일체를 비싸게 주고 샀으니 소원 좀 풀어주라고 간청해서( 집에서도 거실에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잔다고 했다.)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난데없이  밤에 휴대전화로 등산 친구가 어디 있느냐고 해서 자연휴양림에 자러 왔다고 했더니 여자 친구와 같이 온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 까 밤 10시 지나서 도착한 친구는 돼지고기에다 소주병을 10병이나 사갖고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는 나도 처음이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소주를 까다가 하나 둘 잠자리에 쓰러지고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그 길로 축령산 정상을 혼자서 갔다 왔다.

아침 7시에 내려오니 모두들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다. 오늘 산에는 언제 올라가느냐고 막 깨워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서리산을 가자고 했으나 아무도 가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왜 여기를 왔지???? 젊은 혈기(?)에 고집을 부려서 그 여자 친구를 졸라 서리산을 오르는데 어젯밤 술 때문에 처음부터 휘청거리며 따라오지 못한다. 한참을 기다려서 쉬고 또 오르고 해서 정상, 철쭉동산까지는 잘 갔는데 내려갈 길이 어렵다.

다시 오던 임도로 돌아갈 수는 없고  아래서 기다리는 친구 생각에 바로  화채봉을 끼고 하산 길로 달렸다.
그런데 야단났다. 그 여자는 등산화가 아니고 슬리퍼를 신고 오른 것이다.
어이쿠----참----.
몇 번을 앞으로 넘어지고 뒤로 미끄러지며 내려가 계곡을 건너게 되었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신발 끈은 한쪽이 빠지고 야단이다.

“ 아니, 웬 남자가 손도 안 잡아줘요???”

“------”

대답을 못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긴 막대기로 잡고 개울을 건너라고 했더니

“ 왜 그렇게 매너가 빵점이냐!!!”는 것이다.

서리산 하산길은 만만치 않은 급경사길이다. 지금은 사다리 나무계단을 만들어서 모르지만 그때는 그냥 서 있으면 주르륵 하고 밀려 내려가는 아주 미끄러운 흙길이었다. 지나간 젊은 날의 추억이 아름답다.

우리 일행은 올라왔던 임도길로 다시 돌아내려갔다. 이제는 내리막길이라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된다. 잔디광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약수를 마신 후 처음 출발했던 휴양림 매표소 앞에 집결---수퍼 앞에서 만나 차가운  아이스 바를 먹고 서울로 향했다.

2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 차는 중량교에서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오늘의 피날레 종착지인 우이동 버스 종점 ‘ 키토산 오리집’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을 한 덕에 2층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뻘건 숯불 판에 맛있는 토종오리 고기를 올리고 오늘의 산행이 무사하게 끝난 것을 자축하면서 술이 한 순배 씩 돌아갔다.

건배---- 아쉬운 2007년 봄날은 숲속에서 갔다.

                                             2007.5.23 석가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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